[수필의 향기] 뜨거운 무관심-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12월 04일(일) 22:00 가가
아버지는 내 편이 아니었다. 다른 아버지들은 맞고 들어오면 혼을 낸다는데, 난 내게 실컷 두들겨 맞은 녀석이 제 아버지를 대동하고 우리 대문 앞에 나타나면 다짜고짜 아버진 깡패 자식이냐며 나를 나무랐다. 우등상을 내놓아도 가서 깔이나 베지 그깟 밥이 나오냐 죽이 나오냐며 시큰둥하셨고, 장날도 아닌데 아버진 내가 입대하는 날 일부러 새벽 일찍 능주장에 가셨다. 아버진 늘 내가 방황할 때도 뒷짐을 지시고 먼 산을 보시거나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 일인 양 무덤덤하게 딴청을 부리셨다.
그 아버지의 제삿날에 하필 수능 감독에 나섰다. 수능은 뜨겁다. 수험생과 가족 모두 바짝 긴장한다. 고사 관리를 맡은 학교도 그날은 군대가 된다. 분단 국가에서 비행기조차 뜨지 않는 시간, 전시가 틀림없긴 하다.
고사장은 철저히 각본대로 설치된다. 보안은 물론이다. 특히 전투병을 모실 준비로 학교가 전장이 되고 교실은 칸칸이 초소처럼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병사들은 제 위치에서 치열한 전투에 임하고 감독관들은 경계에 2등은 있을 수 없다는 듯 삼엄하다.
내 임무는 복도 보초다. 숙지한 대로 각본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손님이 일을 볼 참이면 모시고 와서 화장실 문을 지정해 주고 기다렸다가 일을 마치면 혹시 몸에 전자 장비나 이상한 물체를 소지했는지 스캐너로 몸수색을 한 뒤 귀대시키는 일이다.
본령이 울리자 전선은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발걸음 소리도 내선 안 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짓하는 초소로 까치발로 뛰어가서 손님을 모시고 장소를 지정해 준다. 근데 웬일, 촌각도 다툴 그는 자기를 주시하는 나만 빼꼼히 바라볼 뿐, 일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열이면 열 그들도 내 역할이 궁금했는지 나만 바라보고 바지를 내릴 줄 모른다. 더 큰 일은 큰 것을 보러 온 손님이 지정된 칸에 다급하게 들어가서 힘을 주고 외려 볼일을 참고 있다. 좁은 틈으로 내 그림자가 빤히 비추니 판자 하나 사이를 두고 힘을 쓰고 일을 치르기가 무안한 모양이었다.
부정을 예방 감독하는 일이 내 임무, 한시도 관심을 떼선 안 될 내 시선과 그들의 시선이 부딪힌다. 그리고 그들은 내 시선 때문에 급박한 생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얼굴만 찡그린다.
이쯤 되니 난 슬그머니 화장실을 나온다. 다행히 투명 유리창으로 안이 훤히 보인다. 난 일부러 딴청을 부리는 듯하면서 사팔뜨기가 되어 안을 주시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야 여기저기서 킁킁하며 힘을 주는 소리와 함께 막힌 하수구가 시원스럽게 뚫리는 소리가 들린다.
난 녀석들 신발까지 스캔한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등까지 툭툭 두들겨 주면서 마지막 전투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를 보낸다.
관심은 어디까지 내 일일 뿐이다. 용변을 보는데 내 시선은 되레 부담되었을 것이고, 녀석들이 바라는 바는 무관심일 터이다. 부정의 강한 부정은 긍정이고 이중 부정은 긍정이라던가. 평소와 달리 잔뜩 긴장해서 요기를 느꼈을 녀석들은 내 ‘뜨거운 무관심’ 덕분인지 가볍게 몸을 털고 다시 전투에 임한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문제도 술술 풀릴 것이다.
아버지도 나를 그렇게 키운 것 같다. 혹여 우쭐할까 봐, 오만해질까 봐, 모른 척 무관심한 척 말이다. 그 덕분에 난 관심을 받고자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군대 생활도 더 충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자립할 수 있었다. 아버지 시선은 늘 멀리 있었다. 그건 일부러 의도하지 않으면 갖지 못할 시선이다. 관심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그러나 뜨거운 무관심은 관심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수능이 끝난 날, 난 아들 녀석과 함께 아버지 제사상에 뜨거운 잔을 올렸다.
본령이 울리자 전선은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발걸음 소리도 내선 안 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짓하는 초소로 까치발로 뛰어가서 손님을 모시고 장소를 지정해 준다. 근데 웬일, 촌각도 다툴 그는 자기를 주시하는 나만 빼꼼히 바라볼 뿐, 일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열이면 열 그들도 내 역할이 궁금했는지 나만 바라보고 바지를 내릴 줄 모른다. 더 큰 일은 큰 것을 보러 온 손님이 지정된 칸에 다급하게 들어가서 힘을 주고 외려 볼일을 참고 있다. 좁은 틈으로 내 그림자가 빤히 비추니 판자 하나 사이를 두고 힘을 쓰고 일을 치르기가 무안한 모양이었다.
부정을 예방 감독하는 일이 내 임무, 한시도 관심을 떼선 안 될 내 시선과 그들의 시선이 부딪힌다. 그리고 그들은 내 시선 때문에 급박한 생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얼굴만 찡그린다.
이쯤 되니 난 슬그머니 화장실을 나온다. 다행히 투명 유리창으로 안이 훤히 보인다. 난 일부러 딴청을 부리는 듯하면서 사팔뜨기가 되어 안을 주시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야 여기저기서 킁킁하며 힘을 주는 소리와 함께 막힌 하수구가 시원스럽게 뚫리는 소리가 들린다.
난 녀석들 신발까지 스캔한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등까지 툭툭 두들겨 주면서 마지막 전투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를 보낸다.
관심은 어디까지 내 일일 뿐이다. 용변을 보는데 내 시선은 되레 부담되었을 것이고, 녀석들이 바라는 바는 무관심일 터이다. 부정의 강한 부정은 긍정이고 이중 부정은 긍정이라던가. 평소와 달리 잔뜩 긴장해서 요기를 느꼈을 녀석들은 내 ‘뜨거운 무관심’ 덕분인지 가볍게 몸을 털고 다시 전투에 임한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문제도 술술 풀릴 것이다.
아버지도 나를 그렇게 키운 것 같다. 혹여 우쭐할까 봐, 오만해질까 봐, 모른 척 무관심한 척 말이다. 그 덕분에 난 관심을 받고자 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군대 생활도 더 충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자립할 수 있었다. 아버지 시선은 늘 멀리 있었다. 그건 일부러 의도하지 않으면 갖지 못할 시선이다. 관심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그러나 뜨거운 무관심은 관심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수능이 끝난 날, 난 아들 녀석과 함께 아버지 제사상에 뜨거운 잔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