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그 절의 개들-김향남 수필가
2022년 11월 28일(월) 00:15
그들은 천연덕스레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큰 개 두 마리와 강아지 다섯 마리였다. 노천법당을 지나 요사채 쪽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발소리를 분명히 듣고 있었을 텐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심해야 하는 쪽은 오히려 우리였다. 사람 다니는 길 한복판에 네 다리를 쭉 뻗고서 낮잠 삼매경이라니! 누가 봐도 ‘야, 진짜 개 팔자가 상팔자다’ 했을 것이다. 녀석들은 눈을 질근 감은 채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조용히 가시오’라고 하명이라도 내린 듯싶었다. 그렇더라도 고이 받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저희끼리 엉켜 있는 놈도 있고 어미 품으로 파고드는 놈도 있었는데, 그 고물고물한 것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입까지 헤벌어져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는데 “차 한 잔 들고 가세요!”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요사채 마루에 스님이 계셨다. 간간이 절집을 찾은 적은 있지만, 우리 같은 뜨내기까지 아는 체하기란 드문 일이었다. 뜻밖의 환대에 쭈뼛쭈뼛 스님 곁으로 가 앉았다. 마당엔 햇살이 가득하고, 강아지들이 꼬무락거리고, 따뜻한 차 한 잔까지 더해지니 세상의 온기가 다 내게로 온 듯하였다.

며칠 후, 우리의 발길은 다시 그곳을 향했다. 산성으로 향하는 완만한 등산로와 그 끝의 툭 터진 시야, 천 년씩이나 변함없이 서 있는 묵묵한 돌 보살과 흙으로 빚은 각양각색의 나한들, 스님의 차 한 잔과 천진한 견공들. 금성산성에서 연동사로 잇닿은 저 모든 것들이 어서 오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중에 견공 일가족은 더욱 선했다. 어찌 그리도 예쁜지, 귀여워 미칠 정도로 앙증맞은 강아지들과 물고 뜯고 아무리 귀찮게 해도 제 몸 기꺼이 내어놓는 어미 개의 헌신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다.

저번처럼 산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절집에 들르도록 하자. 계획은 그러했으나 산성에 오르는 건 중간까지만 하고, 노천법당 보살님 뵈옵는 것도 신속히 마치고, 전후좌우를 살피며 곧장 요사채 쪽으로 내려왔다. 그쯤 어디에서 녀석들을 마주치려니 싶어서였다. 그러나 웬걸, 아무리 살펴도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햇볕 따스하고 날씨도 좋았건만, 서둘러 내려온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척도 없는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스님에게 물으니, 강아지들은 그새 다 입양되어 떠났고 두 놈은 아마도 탁발하러 갔을 거란다. 저 아래 야영장이 있는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거기 가서 놀다 오거나, 등산객들을 따라 산성까지 갔다가 어둑해지면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하 참,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하기야 다시 만나자고 손가락 건 것도 아닌데 기다려줄 리도 만무하지.

스님과 차 한 잔을 마시며 또 개들 이야기로 돌아왔다. 탁발 나간 개들의 이름은 ‘절순이’(절의 순이)와 ‘연백이’(연동사 백구)인데, 입양 보낸 강아지 다섯 마리는 모두 ‘절순이’의 자식들이고 ‘연백이’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단다. ‘연백이’ 역시 암컷이고 나이도 동갑인데 ‘절순이’는 새끼를 벌써 두 번이나 낳았지만, ‘연백이’는 아직 한 번도 없단다. 그런데도 제 자식인 양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저 아래 야영장 손님들에게 소시지까지 탁발해 온 적도 있단다.

옆에 있던 공양주 보살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연백이’를 만났는데 입에 커다란 소시지 하나를 통째로 물고 있었다. 야영장 근처였는데 거기서 얻은 모양이었다. 잘못하다 들킨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연백이’에게 “연백아, 너는 절에 살면서 그런 걸 먹으면 어떡하냐. 너 딱 걸렸어. 스님한테 혼 좀 나야겠다” 하고 야단치는 척을 했다. 그래도 냉큼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한 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데, 양쪽 입가엔 침이 줄줄 흘렀다. 나중에 봤더니 물고 온 그 소시지를 새끼들한테 먹이고 있었다. “세상에, 저도 엄청나게 먹고 싶었을 텐데 그걸 참고 오다니!”

와아, 뭉클한 마음이 울컥 솟았다. 모두의 표정에도 감동의 물결이 생생했다. 거기에는 범접하기 어려운 생명의 숭고함이 담겨 있기도 하고, 모성을 품은 것들의 애틋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옆에 있으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텐데, 녀석들은 언제 돌아올지….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기약 없이 있을 수도 없어 집으로 오는데, 비에 젖은 생쥐꼴의 개 두 마리가 나타났다. 절집과 야영장 중간쯤, 스님 말씀대로 탁발 나간 ‘절순이’와 ‘연백이’가 귀환하는 중이었다. 갑작스레 내린 비에 야영장 사람들도 바삐 철수했을 것이고, 그들도 일찍 귀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명작 속의 주인공을 만난 듯 화들짝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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