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소리 없는 응원가 - 박 용 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11월 20일(일) 22:00
누군가 기도를 하고 있다. 창밖을 보니, 제법 나이 먹은 여인이 교문에 이마를 대고 기도를 하고 있다. 오래도록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그 시간에 문 너머 한 아이 역시, 조용히 묵상에 잠긴 채 시험지가 놓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쩜 잘 보지는 못할지라도 평소보다 못 치르지 말아 달라는 기도 같았다. 딱 평소처럼만 바라는 소박한 기도, 소리 없이 기도하는 여인의 등 너머로 시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만종처럼 울려 퍼졌다.

야구장에서 응원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팬들은 목도 아프고 힘도 들련만 선수처럼 유니폼을 입고 다양한 응원 도구를 준비해서 열광적으로 소리치며 응원을 했다. 누군가를 위해 저리 온몸으로 자기 일처럼 응원할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고 위대하게 보이기조차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는 경기장에서 어느 팀이 꼭 이겨야 한다고 소리 내서 응원하는 그런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치어리더의 현란한 율동에 따라 떼창을 부르고 떼춤을 추며 열광하는 응원에 비하면 너무도 낮고 조용한 응원이었다.

행사 때마다 부르는 우리 애국가 역시 응원가 일종이고, 흥겹거나 슬플 때 혼자고 여럿이고 가리지 않고 부른 아리랑 역시 응원가의 대명사였다. 조선 창업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나 석가모니 일대기를 그린 월인천강지곡 역시 붉은 악마들의 월드컵 응원가 못지않은 대국적 응원가였다.

그렇게 보면 우린 자주 응원가를 부르며 자랐던 것 같다. 학교 교가나 군가 모두 씩씩한 응원가였고, 틈만 나면 모내기나 보리밟기, 수해 복구 등에 동원되어 새마을 노래를 시시때때로 불렀다. 좀 우습지만 응원을 밥 먹듯 하면서 응원을 절로 익힌 셈이다.

오래전 일이다. 일찍 새벽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고흥 어느 섬마을 서낭당에서 노인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무거워 한참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어둑한 곳에 노인은 연신 허리를 굽혔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두 손은 부지런히 빌고 또 빌고 있었다. 그건 기도이기도 하고 응원이기도 했다.

그가 떠난 뒤에 나도 따라서 그 자리에 서 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을 응시했다. 짙은 어둠, 좀 무서웠다.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건 없는 게 아니었다. 거기엔 조상신도 하느님도 부처님도 삼신할머니도 모두 있었다. 어쩜 누군가의 한을 기도로 따뜻하게 덮어 주는 것 같았다.

교문 밖 여인이나 섬마을 노인의 바람, 소리 없는 기도는 바로 무엇보다 우렁찬 응원이다. 간절히 바라면 들어준다는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외침이다. 크든 작든 마음의 발원이다. 응원받는 이의 일이 잘되도록, 응원은 그에게 마음과 정성을 보태는 일이다.

첫걸음과 첫 등교, 첫 만남과 첫 출근 응원, 질문을 던져 놓고 정답을 기다리는 선생님의 응원, 훈련소에 들어가는 아들을 위한, 퇴원하는 부모를 위한 응원… 우린 이렇게 알게 모르게 가족은 물론 이웃 친척들의 응원을 받고 자라 왔다. 이런 응원은 실컷 외치는 응원가와 달리 조용하지만, 진실이 담겨 있고 더 힘이 있다.

어머니의 응원은 결코 처음이 아닐 성싶다. 어느 순간 아이는 어머니의 응원을 무심결에 혹은 우연히 나처럼 엿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가 어머니의 응원에 꼭 보답하리라 믿는다.

누군가 자신의 등 뒤에서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고 생각하면 든든한 힘이 될 것이고, 그런 힘 그런 기도는 꼭 부응한다고 믿고 믿는다. 눈부신 응원, 조용한 기도 그리고 정직한 응답….

지금 내가 그나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으니 이는 필경 누군가 목청껏 응원해 준 덕분이지 싶다. 나도 모르도록 누군가가 나를 위해 조용히 그리고 충분히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응원을 받는 이는 멋지다. 하지만 누군가를 응원하고 살아가는 삶도 잘 사는 인생, 훌륭한 삶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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