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달님에게- 김향남 수필가
2022년 11월 14일(월) 00:15
하늘에 붉은 달이 떴다. 동쪽 하늘에 둥실 떠오른 보름달의 모양이 조금씩 조금씩 가려지는 것 같더니 한 시간쯤 지나자 남아 있던 부분도 모두 사라졌다. 밝고 환하고 명랑해 뵈던 좀 전의 모습과는 달리 어스름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이 일어난 것이다. 달이 붉어 보이는 이유는 태양 빛이 지구 대기를 지나면서 산란이 일어나 그 붉은빛이 달에 비치기 때문이다. 지구 대기로 들어오는 햇빛에 포함된 보라색과 파란색 빛은 파장이 짧아 쉽게 산란되지만, 적색광은 파장이 길어 달의 표면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달의 붉은색은 월식 때마다 조금씩 달라 보이기도 한단다.

개기월식이라는 천문 현상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별별 상상을 다 할 뻔했다. 저번에 제주도 하늘에 빛기둥 현상이 발생했을 때, 그때도 꽤나 심각하게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던가. 제주도에 사는 친구 덕분에 그곳 풍광을 자주 접하는데 그날도 그랬다. 그녀는, 방금 찍은 건데, 지금까지 이런 구름은 처음 본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내온 사진은 무슨 구름이 이럴까 싶게 모양새가 아주 특이했다. 어두운 하늘에 허연 빗금 같은 것이 무더기로 그어져 있는데, 그 정체를 분간하기는 쉽지 않았다.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은비가 내리는 것도 같은 사뭇 낭만적인 풍경이었지만, 이게 대체 무슨 징조일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불안해지는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설왕설래, 공상과 몽상은 싱겁게 끝났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그 이상한 것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그게 뭔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기상청에 문의가 빗발쳤고, 내놓은 대답인즉 집어등 불빛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선에서 야간 조업을 할 때 켜놓은 집어등의 불빛이 5~6킬로미터 높이의 상층운에 반사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구름이 거울 역할을 하면서 빛기둥이 형성돼 하늘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빛이 기둥 모양인 이유는 상층 구름운이 주로 육각 구조의 얼음 입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대기 조건이 맞을 경우 그런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금방 위축되고 말았다. 되지도 않는 말들을 떠들고 있었으니 머쓱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명백한 과학적 논리 앞에 맥없이 기가 죽고 말았지만,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바로 그곳의 구름이었다. 친구는 무진의 명물이 안개라고 한다면, 구름은 제주의 명물이 아닐까 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참에 그걸 확실히 인정하게 되었다고 할까. 제주 상공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초대형 비행선 모양의 일명 렌즈구름이 나타나기도 하고, 나비 모양이나 물결, 양떼, 새털, 삿갓 같은 다양하고 독특한 형상의 구름이 하늘을 장식하곤 한다는데, 왜 그러는지를 새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바람도 많고 공기도 습한 데다 가운데 한라산이라는 높은 산이 솟아 있다. 구름의 모양도 자연히 그러한 지리적 환경을 반영하게 되거니와 습한 공기와 강한 바람이 만나 더욱 멋진 풍광을 연출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구름을 다량 보유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선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일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확인되는 현상들이니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이다. 신화는 고대 인류의 무한한 상상력을 담고 있지만 실은 자연의 한 현상이거나 세상과 인간을 이야기하는 고도의 비유적 장치라는 것으로 그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올림포스의 최고신 제우스는 하늘의 다른 이름이며, 가이아는 대지, 포세이돈은 바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비유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꾼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저 달의 붉은빛을 바라보며 어찌 천문의 이치만을 논할 것인가. 그러기엔 너무 삭막하고 야박하지 않은가? 과학은 매번 코웃음을 칠지 몰라도 하늘은 여전히 꿈의 공간이고 섬김의 대상이며 심판자의 집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며, 별빛이 반짝이고, 은하수와 노을과 구름이 살고 있는, 하늘은 아직 신화의 공간이고 절대자의 거처이다. 그리하여 오늘 밤도 나는 다시 달님을 우러른다. 달님이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시라. 밤길을 비춰 훤하게 해 주시고, 부디 이 연약한 자의 소원도 꼭 한번 들어주시라, 잊지 않고 사뢰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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