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이제 버릴 때도 됐다- 최영태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연구원장
2022년 11월 09일(수) 00:30
2022년 대선 당시 진보 진영 사람 다수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준비 부족과 가족 문제로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2007년 이명박 후보, 2012년 박근혜 후보, 2017년 문재인 후보도 도덕성이나 능력 면에서 우려가 컸지만,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라는 게 그랬다. 아마 다음에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임기 초반부터 20~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것은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우리나라 제도는 그가 아무리 정치를 잘못해도, 그리고 지지도가 지금보다 더 떨어져도 변함없이 대통령직에 머무르게 할 것인데 말이다. 최후의 카드로 탄핵이라는 절차가 있지만, 그것은 지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꺼내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헌법을 명백하게 어겼을 때만 허용되는 절차이며, 그것도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아야 가능하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도, 그리고 국회에서 170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 민주당도 지금의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삼권분립은 형식적일 뿐 실제로 대통령은 입법부와 사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뽑아 놓고 5년 동안 후회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 아직도 진보나 보수 진영은 자기편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면 반대파들을 한칼에 베어 버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정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수 진영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그런 쾌감을 맛보았는가? 진보 진영은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성취감을 가져보았는가?

선진 민주국가 중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등 극소수 국가에 불과하며 대부분 국가는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프랑스 등은 우리식 대통령제와는 거리가 멀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은 지방 정부에 많은 권력을 위임하고 있고, 의회가 예산 심의와 고위 공직자 임명권 동의, 외교 정책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 등에 집중하고,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고 있다.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2017년 필자는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소속 분과위는 권력 분과위였다. 권력 분과위에 소속된 위원 11명 중 2명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2명은 내각제를, 나머지 7명은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를 지지했다. 필자는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를 지지했다.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채택한 권력 구조는 권력분산형 대통령제였다. 주요 골자는 대통령에게 기획·재정, 통일, 외교, 국방의 권한을 부여하고, 총리에게는 나머지 내각을 담담하게 하는 것이었다. 기획·재정을 담당하는 부서는 재정 편성권을 통해 모든 부서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국방, 외교, 통일에 덧붙여 기획·재정권을 부여한다면 대통령제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면서 동시에 권력 분산을 도모할 수 있다.

총리는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했다. 이 제도 하에서 총리는 대부분 부서의 장관 추천권과 국정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명실상부하게 제2인자 역할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국무총리가 국민의힘 출신이든 민주당 출신이든 우리가 현재, 그리고 과거에도 상시로 겪었던 대통령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조국 파동 이후 최근까지 대한민국 사회가 겪고 있는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은 해방 후 신탁통치를 둘러싼 좌우 대립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이 갈등과 대립은 대부분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진영 간 경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국민 갈등을 치유하고 대통령제가 갖는 부정적 요소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내각제든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든 빨리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저출산, 기후 위기, 경제적 어려움, 신냉전체제 등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아닌 통합적 정치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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