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씨름해야 할 천주교- 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2022년 11월 01일(화) 00:15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려서 “천주의 고양이여”라고 기도를 하는 할머니에게 왜 고양이를 찾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던 할머니는 손자의 질문에 당황해 “그야 하느님이 고양이를 좋아하시나 보지”하고 얼버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세상의 죄를 면하여 주시는 자 천주의 고양이여”라는 기도문이었고, 고양은 어린양(이 말은 붙여 써야 한다.), 즉 羔羊이라는 한자어였다. 羔는 ‘새끼 양 고’자다.

천주교에는 어려운 한자 말이 많다. 조선조 말엽에 전래된 이후 200여 년 동안 기도문과 많은 전례(典禮) 용어 등이 쉬운 우리말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한자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나 한문은 알지만 교회 용어에 서투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생소하고 어려운 말이 많다. 세 번 치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올리는 삼종(三鐘) 기도를 세 가지(三種) 기도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묵주기도 중 ‘영광의 신비’ 5단에서 “어머니, 이 모든 기도를 하느님께 전구해 주소서”라고 할 때, 전구(轉求)란 성모 마리아와 그 밖의 성인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혜를 구한다는 뜻이다. 나보다 더 하느님께 가까운 존재에게 전구를 청하면 하느님이 더 잘 들어 주실 거라는 생각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나보다 더 하느님 뜻에 맞게 청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말도 쉽지는 않다.

사도신경 중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에 나오는 통공(通功)은 1)기도나 선행의 대가가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하늘나라나 연옥의 다른 이들과도 통하는 일, 2)분업으로 어떤 일을 이룸이라는 뜻이다. 이때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한자 말에 나름대로 장중하고 전아한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엄숙하고 정중한 미사 등 천주교의 종교의식에는 한자 말이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자 말에 의지하는가 싶기도 한데, 천주교는 ‘맞갖다(마음이나 입맛에 꼭 맞다)’ 같은, 아름답지만 일반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우리말도 곧잘 쓰고 있다.

내가 정확하고 자세히는 몰라도 쉬운 말로 바꾼 것도 많다. 그런데 실제로는 바꾼 말을 잘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느 대교구청의 경우 성모당에 대해 ‘교구의 제1 주보인 루르드(프랑스 남서부의 성모 발현지)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모신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보(主保)는 주보성인의 준말이고, 주보성인은 수호성인의 다른 말이다. 수호성인으로 말을 바꾸었는데도 주보라고 쓰는 곳이 많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천주교회에 다니는 나어린 학생들은 혼란스럽고 어려울 것이다. ‘미덥다’를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뜻으로 알 만큼 우리말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으니 한자 말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대관절(大關節)은 ‘여러 말 할 것 없이 요점만 말하건대’라는 뜻인데, 아이들은 ‘큰 관절’이라고 답한 경우가 있었다. 발꿈치와 정강이 사이를 잇는 띠 모양의 관절이 대관절이긴 하지만, 그것은 ‘帶關節’이라고 쓴다.

이런 세대를 대상으로 어떻게 어려운 교리를 가르치며 어떻게 쉽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할까를 고심해야 할 것이다. 용어를 더 쉽게 바꾸든지 한자 교육을 병행하든지.

나는 최근 5주간의 교육을 거쳐 견진성사를 받았다. 중학생들도 많았는데, 그중 한 녀석에게 견진이 뭔지 물어보니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堅振이라는 한자를 알면 그 뜻이 분명해질 수 있었겠지만, 마지막 시간에야 의미를 설명할 만큼 강의는 이런 점에 좀 무심했다.

교육의 정식 명칭은 ‘전신자 재교육 및 견진성사 안내’였다. 나는 이 ‘전신자’가 다른 종교에서 넘어온 사람들, 우습게 말해 ‘귀순용사’를 뜻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재교육을 하는 것이고 한자로는 ‘轉信者’라고 쓰나 보다 싶었다. 그러나 그런 단어는 아예 없었다. ‘전신자’는 전체 신자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전 신자’라고 띄어쓰기를 해야 하며 읽을 때도 그렇게 읽어야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된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지만 특히 천주교는 신자 확충과 교리의 정확한 전승을 위해서라도 한자 문제, 나아가 우리말과 우리글 사용에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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