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보고 듣는 사람들- 안수자 동화작가
2022년 10월 25일(화) 00:30
3년 전, 두 언니와 함께 고창에 3000여 평의 농지를 마련했다. 농지에 아스파라거스, 더덕, 땅콩 등을 심어 놓고, 평일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근무하고 주말에만 모여서 농사를 짓는다. 혹자는 주말농장 정도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지인들과 인터넷 쇼핑몰에 판매하고 있으니, 어설프지만 우리는 진짜 농부다.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 주말만 되면 시끌벅적해진다. 여느 시골처럼 우리 마을도 90% 이상이 일흔이 넘은 분들이고 그중 반은 여든 살이 넘은 어르신들이다. 특히 우리 옆집에 사는 노부부가 가장 고령자인데 아흔을 바라보고 있으며, 부인은 중증 치매 환자다. 할머니는 매일 우리 집 앞 골목을 유모차를 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운동하는데 우리를 보면 똑같은 질문을 한다.

할머니가 “어디서 오셨소?” 물으면 “광주에서 왔어요” 우리도 똑같이 대답한다. “오메, 지비가 욕보요. 아가씨가 이렇게 와서 도와 주니 참말로 고맙소. 누가 이리 해 주간디, 지비나 된 게 이렇게 해 주제.” 할머니는 고맙다며 활짝 웃는다. 우리는 이렇게 주말마다 똑같은 대화를 셀 수 없이 반복한다. 아마도 우리가 전에 살던 사람을 도와 주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하는데도 할머니는 늘 우리한테 고맙다니 우리가 더 고마울 일이다.

한 번은 예초기를 메고 있는 남편을 보고 할머니가 말을 걸어 왔다. “뭐 하고 오시오?” 밭두렁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고 오는 길이었다. 남편은 할머니의 색다른 질문이 반가워서 풀을 베고 온다고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몇 번을 되물었다. “풀 베고 온다고요.” 남편이 할머니 귀에 대고 큰소리로 대답하자 그때야 할머니 얼굴이 환해지며 “아~ 풀약하고 왔구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할머니가 잘 못 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골에서 논두렁 밭두렁 풀을 베는 것은 비상식적이 일이다. 제초제를 뿌리는 게 시골에서의 상식이다. 그러니 할머니는 상식과 다른 얘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다른 어르신들 또한 우리가 밭에 난 잡초를 뽑고 있으면 한숨을 푹 쉬며, 풀약을 하면 될 일을 왜 그리 미련스럽게 구느냐며 진정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리를 걱정한다.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잡초를 뽑는 일은 정말 힘들다. 제초제를 하면 쉽고 편하다는 걸 우리도 잘 안다. 실제로 진지하게 농약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인터넷과 지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우리는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쪽을 택했다.

뉴스를 보며, 뉴스에 달린 인터넷 댓글을 보며, 정치 유튜브를 보며 옆집 할머니와 시골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갈수록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은 줄고, 들어 달라는 사람들만 판을 치는 세상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말에는 귀를 막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꼴이라니. 어떤 말이든, 어떤 사건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듣고, 보고, 쓰고, 말하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세상이다.

분명 옆집 할머니처럼 귀가 어두운 사람도 아닐 텐데. 그나마 옆집 할머니는 누구를 보든 어떤 일을 접하든 늘 고맙고, 예쁘고, 좋은 사람으로 일관되게 해석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늘 한 쪽 편에서 답을 정해 놓고 기사를 쓰는 일부 기자,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귀 막고 눈 감고 갖은 욕설로 반복하는 사람들. 어떤 의도로 말을 했는지 알려 하지 않고,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모른 척,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금빛 배지를 단 떼쟁이 어른들. ‘나는 피해자다. 그러니, 너희도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외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괴로움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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