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역사에 무지한 사회 자화상
2022년 10월 13일(목) 00:45
한국국민당이란 당이 있다. 1980년 전두환 군부정권의 위성정당이었던 국민당이 아니라 193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망명지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에서 창당한 민족 정당 이야기다. 이사장은 임시정부 김구 국무령이었고, 이사는 역시 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한 이동녕을 비롯해서 안중근의 동생인 안공근 등 항일 민족진영의 거물들이 포진했던 당이다. 1940년에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과 합당해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기 전까지 임시정부의 여당이었다.

한국국민당은 1936년 3월 15일 ‘한민’이란 시사월간지를 창간했는데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중국 각지를 전전하면서도 1940년 10월 15일의 23호까지 발행했다. 당시 정확한 정세 분석과 역사관에 목말랐던 교포들에게 가뭄 끝의 단비 같은 호응을 받았다. ‘한민’ 제4호(1936년 6월 25일)에는 “멀리는 태평양 저편, 가까이는 양자강 이편에서 열렬히 옹호하는 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제5호(1936년 7월 30일)에는 “각처 애국동포들의 열렬한 옹호와 사랑을 받음에 감격”한다고 썼을 정도다. 그런데 창간호 말미에 <묵상(默想)>이란 지면이 눈길을 끈다. 세 가지 주제를 놓고 각자 묵상하자는 것이다. 첫째 “우리 조상나라는 얼마나 훌륭하였으며 그 력사는 얼마나 빛났던가”, 둘째 “우리나라를 빼앗아간 원수 일본에 대한 분한 마음은 얼마이며 원수 갚을 마음은 얼마나 급한가”, 셋째 “오늘날 노예 생애를 하고 있는 동포의 정상은 얼마나 참혹한가”라는 내용이다.

‘한민’ 제9호(1936년 11월 30일)에는 <배달(倍達)의 건국기략(建國記略)> {배달국의 건국기를 대략 서술한다}이란 글이 실려 있는데 “10월 3일이 우리 한배께서 개천건국(開天建國)하신 우리 배달국민의 큰 기념일임은 누구나 다 알 것”이라면서 4393년 전에 배달국이 건국되었다고 썼다. 단군기원, 즉 단기(檀紀)로는 1936년이 4269년인데 그보다 124년 전에 배달국이 건국되었다는 인식이다. ‘단군조선’도 부인하기 바쁜 이 나라의 현실에서 단군조선 전에 ‘배달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1936년에는 ‘누구나 다 알았다’는 서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더욱이 이 논설은 배달국의 강역을 ‘늘힌뫼’인 ‘백두산(白頭山)’을 중심으로 동쪽은 강원도 창해, 남쪽은 전라남도, 서쪽은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란주(蘭州), 북쪽은 러시아령 연해주까지 “동서 4000 남북 6000여 리”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대한민국이 광복 후 프랑스 같은 정상적인 정치 경로를 걸었다면 ‘한민’의 이런 역사 인식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일반 역사 상식이 되었을 것이다.

‘한민’ 제9호는 또 ‘건국기원절 후(後) 감언(感言)’{건국기원절 후에 느끼는 말}이란 글에서 나라 잃은 ‘망국노’가 된 이유를 “남을 높이고 나를 업신여기며 남의 것은 까닭 없이 좋아하고 내 것은 덮어놓고 내버렸다”는 말로써 “대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상들의 력사를 중국 문헌에서 찾아냈지만 우리의 자손은 우리의 력사를 아라사(러시아)나 일본의 문헌에서 찾지 않게 만들어 주기를 결심하자”라고 다짐하고 있다. 지금 한국 역사학자들이 ‘삼국사기’를 가짜라면서 연도부터 맞지 않는 ‘일본의 문헌’, 곧 ‘일본서기’를 가지고 가야를 야마토왜의 식민지라고 우기는 작금의 매국 추태에 대한 서글픈 예언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가야를 ‘임나일본부’로 둔갑시켜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해 논란을 일으키더니 윤석열 정권은 일본까지 끌어들인 합동 군사훈련에,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조선은 일본 침략 때문에 망한 게 아니다”는 막말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모두 식민사관이 우리 역사학계와 사회 상층부를 장악한 부끄러운 현실이 만든 자화상들이다. ‘한민’ 제10호(1937년 1월 1일) 신년호는 “우리는 조국 광복을 위하여 30년 동안 악전고투하는 항일군”이라면서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독립문에 자유종을 울릴 때까지”라고 주창하고 있다. 아직 우리 역사에 독립의 자유종은 울리지 않았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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