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김진구 전 광주상일여고 교장
2022년 10월 12일(수) 00:30 가가
달포 전에 정년 퇴직을 했다. 많이들 백수(白手)가 되었다고 했다. 맨손이니 직업이 없다는 뜻이렸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무소속이란 말에 더 실감이 간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자의든 타의든 반백 년 이상을 어디에든 소속되어 있었다. 제도에 얽매였든 비집고 들어갔든 간에 유소속(有所屬)이었는데 이제 다 풀어졌다.
유소속과 무소속의 대비되는 느낌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매곡산에 오르면서 발밑에 늘어진 고속도로의 차량을 먼 옛날 추억처럼 내려다봤다. 주말에 있었던 갖가지 사연을 집에 놓고 무겁게 짓누르는 일터로 빠르게 이동하는 출근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대열에 끼었는데 오리나무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구경하듯 바라봤다. 그리고 가장 여유롭게 느껴지는 시간은 9시부터 11시였다. 부탁할 것도 지시할 것도 처리해야 할 것도 없는 넉넉한 오전이어서 편안했다.
그러나 이런 느낌도 유한할 것이다. 곧 무덤덤한 일상처럼 반복될까 봐 걱정된다. 직함 앞에 전(前)이 붙고, 아내와 조율하여 첫 달 연금을 나눴다. 자주 가게 될 곳의 시내버스 노선도 검색해 보았다. 환승하는 방법을 물어서 실행해 보다가 빨리빨리 못한다고 버스 기사님께 짜증 한 방 먹기도 했다. 한 재벌 정치인은 토론회에서 시내버스 요금이 1000원 일 때 70원이라고 대답해서 비판을 받았다. 작년에 어느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정부 질문에서 택시 기본요금을 23년 전의 금액인 1200원이라 답변해서 곤욕을 치렀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시내버스와 지하철이 환승되고 요금도 1250원임을 확인했다.
퇴임 직전에 갔던 몇 연수에서 반복된 말이 있었다. 교원·경찰·군인 퇴직자의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털리거나 이용당했으면 이런 말이 지켜야 할 준칙처럼 강사의 입에서 나올까. 현실은 이렇게도 역설적인가, 바르게 살도록 가르쳤고 범죄자를 잡아들였고 상명하복으로 강직하게 살았기에 범접할 수 없고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데 실물 사회에는 더 고수들이 많은가 보다.
가까이 지내는 군 출신 선배가 아픈 경험으로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왜 사기를 당하는가 딱 한 문장이었다.
“상대방이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짠하고 달콤한 것은 기본 태도이고 어떤 형태로든 이득이 될 만하기에 덜컥 문다는 것이다. 미끼를 물지 않은 붕어·잉어·돔은 지금도 저수지에서 섬진강에서 득량만에서 자유롭지 않는가, 오늘날 보이스 피싱은 여기에 더해 권력기관을 사칭한 위압도 한 몫 한다.
정신과 의사인 이근후 교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책에 의미 있는 구절이 있다. 50여 년간 15만여 명의 환자를 만났으니 자신만의 좌우명이나 삶의 철학이 있을 것 같은 데 없다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차선(次善)으로 살자”란다. 차선은 최선(最善) 다음이다. 완벽에 매달리면 끊임없는 경쟁일 뿐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퇴직 후 시력을 잃고 당뇨와 통풍 등 7가지 중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분수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그 지점에서 재미있게 산다고 한다.
플라톤의 다섯 가지 행복론도 모두 조금은 부족해야 한다고 했다.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칭찬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용모,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 정도의 명예, 한 사람에게는 이기지만 두 사람에게는 지는 체력, 청중의 절반쯤은 박수를 치지 않는 말솜씨. 이 정도에서 자족하면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이라고 하니 실행해 보고자 한다.
이제 가면을 벗고 꼬막 껍질만 한 명예를 내려놓는다. 목소리는 낮게 하고 발걸음은 빨리하여 심신을 추스를 것이다. 출간한 칼럼집을 백팩에 넣고 ‘백반’(百飯) 기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신세 졌던 선후배 동료 100명을 만나 백반 한 그릇 대접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무소속이기에 쫓기거나 특별히 걸릴 일이 없다.
가까이 지내는 군 출신 선배가 아픈 경험으로 한 수 가르쳐 주었다 왜 사기를 당하는가 딱 한 문장이었다.
“상대방이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짠하고 달콤한 것은 기본 태도이고 어떤 형태로든 이득이 될 만하기에 덜컥 문다는 것이다. 미끼를 물지 않은 붕어·잉어·돔은 지금도 저수지에서 섬진강에서 득량만에서 자유롭지 않는가, 오늘날 보이스 피싱은 여기에 더해 권력기관을 사칭한 위압도 한 몫 한다.
정신과 의사인 이근후 교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책에 의미 있는 구절이 있다. 50여 년간 15만여 명의 환자를 만났으니 자신만의 좌우명이나 삶의 철학이 있을 것 같은 데 없다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차선(次善)으로 살자”란다. 차선은 최선(最善) 다음이다. 완벽에 매달리면 끊임없는 경쟁일 뿐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퇴직 후 시력을 잃고 당뇨와 통풍 등 7가지 중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분수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그 지점에서 재미있게 산다고 한다.
플라톤의 다섯 가지 행복론도 모두 조금은 부족해야 한다고 했다.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칭찬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용모,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 정도의 명예, 한 사람에게는 이기지만 두 사람에게는 지는 체력, 청중의 절반쯤은 박수를 치지 않는 말솜씨. 이 정도에서 자족하면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이라고 하니 실행해 보고자 한다.
이제 가면을 벗고 꼬막 껍질만 한 명예를 내려놓는다. 목소리는 낮게 하고 발걸음은 빨리하여 심신을 추스를 것이다. 출간한 칼럼집을 백팩에 넣고 ‘백반’(百飯) 기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신세 졌던 선후배 동료 100명을 만나 백반 한 그릇 대접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무소속이기에 쫓기거나 특별히 걸릴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