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월드’로의 초대-신우진 광주시민인문학 사무국장
2022년 10월 07일(금) 00:30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만난 건 막 고등학생이 된 1학년의 어느 봄날 새 학기가 시작되고 각자 학급문고를 채우기 위해 의무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책을 가져와 공유할 시점, 우연히 청소 시간에 학급문고함을 뒤적이다가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발견했다.

나는 보충수업과 그 뒤의 자율학습도 모자라 식사도 잊고 상실의 시대에 빠져들었다. 454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이었으므로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여 도저히 책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후 나는 날을 세우며 집중한 피로감과 소설이 준 기묘한 감상이 밀려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새벽의 하늘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 갔다가 그것으로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새벽 공기를 마시기 위해 동네 한 바퀴를 상념에 젖어 천천히 걸었다.

그후로 나는 하루키즈, 하루키언, 하루키스트가 되었다.

하루키 월드로 들어 가는 첫 관문은 하루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인데,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이자 하루키의 모든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평가 받는 작품으로 허무함과 깊은 상실감을 극복하려는 젊은이들의 여정이 바람처럼 펼쳐진다. 하루키가 서른의 나이에 쓴 ‘청춘의 만가(輓歌)’로 초기 작품의 모태이자 하루키 소설의 원형이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루키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라고 말하며 “스물아홉 살의 어느 봄날, 진구 구장의 맨흙더미 외야석(그 당시에는 아직 시트란 게 없었다)에 누워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고. 그 옛날 뭔가 쓰려고 하면 느껴지던 부담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새로 사온 싸구려 만년필과 원고지를 테이블에 나란히 놓아둔 것만으로, 왠지 기분이 착 가라앉고 안심이 되었을 정도였다”라고 표현했다.

또 “나는 좀 더 심플하게 쓰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심플하게, 심플한 언어를 쌓아,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한 문장을 쌓아, 결과적으로 심플하지 않은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라고도 말하며 선명한 메시지를 전한 게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라고 서술한다.

연애하듯 읽는 책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내게 있어 그의 작품은 독서나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 차라리 매혹의 대상이다. 그의 소설은 강한 흡인력과 감미로운 도취감으로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다는 평이나 공허감과 결핍감 속에서 찾는 젊음의 낭만으로 메마른 청춘의 편린을 경쾌한 터치로 묘사하고 내면을 언어화하려는 이미지와 언어 갈등의 소용돌이 같은 하루키 문학은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하지만 공허감과 결핍감에 젖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의 독자들에게 정신적인 영양소를 채워 주며, 인간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도회적인 센스와 경쾌한 문장으로 세련되게 묘사한다는 평도 있다.

항상 새롭고 기존 문학의 틀에서 벗어난 탈규범적인 스타일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하루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직면하는 현실의 고뇌와 문제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려는, 주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하는 하루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의 감각이 도시적 공간에서 혼자일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신세대의 감각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매력적인 하루키 감성과 문학은 17세 소년의 마음을 송두리째 빨아 들였다. 30대가 지난 지금도 삶의 모토가 되어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묻고 용감하고 도전적이며 실험적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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