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엔 할머니 반열에 올려 주오-이성자 동화작가
2022년 10월 06일(목) 00:30
카톡! 카톡!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새벽 5시다. 누가 돌아가셨나? 정신을 가다듬고 휴대전화를 열었다. “나도 드디어 할머니 반열에 올랐어.” 박 여사의 문자였다. 웃음이 나왔다. 박 여사는 평소 “예의 없는 친구들아, 카톡은 오전 9시 넘어서, 오후에는 9시 이전에 넣으란 말이다”라며 우리를 닦달하던 친구였다. 별명이 ‘아홉 시’인 박 여사가 얼마나 기뻤으면 이 새벽에 문자를 넣었을까? 그것도 여러 명이 함께하는 단톡방에. 아들만 둘 키웠던 박 여사는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안 하는 자식들 때문에 여간 속이 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둘째가 먼저 결혼했는데, 예쁜 공주님을 순산한 모양이다.

곧바로 ‘할머니 된 거 축하한다’ ‘너는 정말 좋겠다’ 등의 문자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각인데도, 짜증은커녕 진심으로 축하의 답 글을 달아 주다니…. 할머니가 되는 일은 이토록 기쁘고 축하할 일이었구나, 새삼 가슴이 뭉클해졌다. 평소 말이 많기로 유명한 박 여사가 유일하게 입을 꾹 다무는 경우는 친구들이 손자손녀 봤다고 한턱내는 날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은 임종 당시 두 아들의 손을 잡고 꼭 결혼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셨다니, 그녀의 벅찬 가슴은 알고도 남을 것 같다.

길에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를 만나면 웃음이 절로 나오고, 배가 불룩한 임산부를 보면 장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모두가 나라를 구하는 우리들의 복덩이다. 그런데 통계청이 지난 8월 24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 출산율은 0.81명으로 전년 대비 0.03명(-3.4%) 감소했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합계 출산율이 한 명에 못 미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니, 정말 이래도 되는가? 뉴스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재는 지자체마다 출산 장려를 위해 여러 가지 해결 방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 해결 방법이 정작 결혼을 앞둔 당사자들의 마음을 쉽게 바꿀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을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여러 정책을 내놓지만, 아직도 주저하는 마음이 피부로 느껴진다. 온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이 다 같이 도와서 이제는 안심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일은 국가가 정말 통 큰 결정을 내렸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모든 어머니의 소원이 할머니 반열에 오르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 그대들을 태어나게 하고 지금껏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한 번 들어주면 어떨까? 돈 벌어서 또 집 장만해서 할 거라며 내일모레 미루다가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말 텐데. 요즈음 즐겨 부르는 노래 가사를 보면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지만, 이제 결혼도 필수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세상의 알록달록 수많은 꽃은 잠깐 피었다가 시들지만, 복덩이인 아이들의 웃음꽃은 우리 집은 물론 이 나라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보물 중의 보물이다. 그대들만이 피울 수 있는 거룩한 웃음꽃이라는 걸 백만 번 생각하고 생각해 볼 일이다.

그동안 혼자여서 힘들었던 일들이 둘이라면 술술 풀릴지 누가 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하게 손잡고 은행으로 가서 진지하게 상담해 보면 결혼할 돈도, 집 장만할 방법도 답이 나오리라 믿는다. 사람마다 타고난 복이 서로 다르니 한 번 믿어볼 만한 일이다. 올가을엔 어머니가 휴대전화에 자식 결혼 사진, 또는 손자 손녀 얼굴 저장해 두고 자랑하며, 호주머니 털어 한턱낼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을 안겨 드리자. 카톡! 카톡! 새벽 한 시에 울려도 좋고, 새벽 두 시에 울려도 좋으니 걱정일랑 내려놓고, 하루빨리 어머니가 ‘할머니 반열에 오르게 하는 기쁨’을 안겨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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