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이중섭 소설가
2022년 09월 30일(금) 01:00 가가
“당신도 하영이 문제만 해결되면 저렇게 살아.”
아내가 TV를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자 탤런트가 아담한 암자의 비구승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런 조그만 집에서 늘어지게 쉬고 싶다.”
아내는 화면 속 암자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지난 사월 초파일에 방송했던 다큐멘터리였다. 아내의 어깨는 항상 축 처져 있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딸 하영의 얘기가 나오면 우리 부부는 말이 줄어들었다. 갈수록 혼자보다 두 사람의 삶이, 두 사람보다 세 사람의 삶이 버겁게 느껴졌다.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암자의 풍경이 따스해 보였다. 암자는 딱 그 산의 모습처럼 풍경에 충실했다. 계속해서 무소유를 실천한 스님과 수목장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영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절대 따로 살면 안 돼. 그 후에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아내는 눈을 떼지 않은 채 계속 혼잣말을 했다. 딸의 장애 지속 기간을 우리가 죽기 전에 한정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발달장애에 대해 전문 강사가 했던 말을 지금도 믿고 있었다. 하긴 믿지 않는다 해도 또 다른 뾰족한 선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꾸역꾸역 그때까지 버티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요즘 환경이 좋아져 장애인들의 평균 수명이 훨씬 늘었다. 일반인과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 결국 딸은 우리 부부가 세상을 떠난 뒤에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이 컸다.
막막한 마음에 식탁에 앉아 술을 한 잔 따랐다. 아내가 옆으로 슬그머니 앉았다. 제대 후 독립한 아들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들 얘기는 늘 목소리를 죽이며 말해야 한다. 아들 이름만 들어도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딸이 들을까 조심했다. 다음은 시골 친구 얘기로 넘어갔다. 말이 나온 김에 오랜만에 직접 전화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삶의 공간이 두 군데나 다름없었다. 고향에서 일어난 일들이 서울의 삶에 늘 동행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았다. 전화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상상의 날개는 고향을 향해 뻗어 나간다. 섬진강이 길게 흘러내리는 길을 따라 한없이 날아간다. 순천이 가까워지면 오른쪽 길로 방향을 바꾼다. TV에서 본 암자가 나타난다. 암자를 뒤로하고 한참 더 길을 재촉하면 소설 ‘태백산맥’의 고장 벌교가 나온다. 꼬막 맛을 다시며 한참 더 내려간다. 상상의 날개에 힘이 빠질 때쯤 남도의 끝자락 고흥 바다에 닿는다.
시골 친구는 늘 이맘때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들 때문에 힘겨워했다. 담배를 끊은 지 삼 년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느새 창밖 날씨가 흉흉해졌다. 비바람이 거셌다. 하루 일에 지친 아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마시는 술맛은 나이가 들수록 밋밋해졌다. 식탁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바람이 거센지 창문이 들썩였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누워 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자정이 넘으니 점점 더 바람이 거세지며 창문이 흔들렸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베개를 든 채 들어왔다.
“나는 혼자 절에서 못 살 것 같아. 바람 소리가 무서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내 침대로 파고들었다. 아내는 아픈 후 누가 옆에 자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골밀도도 약해졌고 암은 완치되었지만 언제 재발할지 몰랐다. 아내의 모습에서 자주 장모의 모습이 겹쳤다. 비바람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몽롱한 채 누워 있었다. 깜박 잠이 들었나 싶은데 뭔가 옆자리가 허전했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기 방으로 돌아갔지 싶었다. 잠시 후에 화장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창문을 내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햐따! 별이 참말로 곱네!”
햐따? 한밤중에 시골 마당에서 환생한 장모님이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비바람은 그치고 산등성이 위에 까만 하늘이 드리워졌다. 관악산 정상에서 사당 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 위로 별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낮게 걸쳐 있었다.
아내가 TV를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자 탤런트가 아담한 암자의 비구승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런 조그만 집에서 늘어지게 쉬고 싶다.”
아내는 화면 속 암자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지난 사월 초파일에 방송했던 다큐멘터리였다. 아내의 어깨는 항상 축 처져 있었다.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는 암자의 풍경이 따스해 보였다. 암자는 딱 그 산의 모습처럼 풍경에 충실했다. 계속해서 무소유를 실천한 스님과 수목장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영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절대 따로 살면 안 돼. 그 후에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삶의 공간이 두 군데나 다름없었다. 고향에서 일어난 일들이 서울의 삶에 늘 동행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았다. 전화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상상의 날개는 고향을 향해 뻗어 나간다. 섬진강이 길게 흘러내리는 길을 따라 한없이 날아간다. 순천이 가까워지면 오른쪽 길로 방향을 바꾼다. TV에서 본 암자가 나타난다. 암자를 뒤로하고 한참 더 길을 재촉하면 소설 ‘태백산맥’의 고장 벌교가 나온다. 꼬막 맛을 다시며 한참 더 내려간다. 상상의 날개에 힘이 빠질 때쯤 남도의 끝자락 고흥 바다에 닿는다.
시골 친구는 늘 이맘때면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들 때문에 힘겨워했다. 담배를 끊은 지 삼 년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느새 창밖 날씨가 흉흉해졌다. 비바람이 거셌다. 하루 일에 지친 아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마시는 술맛은 나이가 들수록 밋밋해졌다. 식탁을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웠다. 바람이 거센지 창문이 들썩였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누워 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자정이 넘으니 점점 더 바람이 거세지며 창문이 흔들렸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아내가 베개를 든 채 들어왔다.
“나는 혼자 절에서 못 살 것 같아. 바람 소리가 무서워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내 침대로 파고들었다. 아내는 아픈 후 누가 옆에 자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골밀도도 약해졌고 암은 완치되었지만 언제 재발할지 몰랐다. 아내의 모습에서 자주 장모의 모습이 겹쳤다. 비바람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몽롱한 채 누워 있었다. 깜박 잠이 들었나 싶은데 뭔가 옆자리가 허전했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기 방으로 돌아갔지 싶었다. 잠시 후에 화장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창문을 내다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햐따! 별이 참말로 곱네!”
햐따? 한밤중에 시골 마당에서 환생한 장모님이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비바람은 그치고 산등성이 위에 까만 하늘이 드리워졌다. 관악산 정상에서 사당 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 위로 별들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낮게 걸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