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한가위, 대보름달-서금석 문학박사
2022년 09월 08일(목) 00:30
어렸을 적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그네는 큼지막한 삼각대 나무로 만들어졌다. 단오 행사 때에 한복 차림의 우리네 어머니들의 그네 타기 장기 자랑이 이어졌다. 바람을 가르며 마치 학이 나는 듯 휘날리는 한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 시절이 기억난다.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단오는 사라지고, 그 시절 그네도 없어지고, 한복 차림의 어여쁜 어머니들도 보이지 않는다. 음력 5월 5일 명절 단오는 사라졌다. 기억은 사라지니 기록해 두지 않으면 오래도록 박제하기 쉽지 않다. 사라진 절일이 어디 단오뿐일까? 정월 대보름, 삼짇날, 한식, 유두절, 칠월 칠석, 중양절, 동지, 납일 등 그 많던 명절이 사라졌다. 설날과 초파일, 복날 그리고 추석만이 살아남았다. 지켜내지 않으면 그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동북아시아에서 음력 8월 15일을 명절로 쇠는 나라는 중국과 우리나라뿐이다. 이 독특한 명절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이다. 음력을 인정했던 것이 그 하나이고, 조상에게 성묘를 했던 것이 나머지 이유였다. 다만 명절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 중국은 중추절(仲秋節)이고, 우리는 추석(秋夕)이라고 했다.

중국 중추절의 의미는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단조롭다. ‘가운데 가을’ 혹은 ‘가을의 가운데’라니 음력 8월을 이른다. 이에 반해 우리네 추석은 ‘가을 저녁(夕)’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적(詩的) 표현인가? 한자 저녁 석(夕)은 밤에 뜨는 달(月)과 그 태생적 DNA가 같다. 낮에는 해(日) 그리고 저녁(夕)에는 달(月)을 연상시킨다. 한자에는 동그란(O) 표기(부수)가 없다. 고로 저녁 석(夕)자는 저녁의 달(月)로 초승달에서 시작하지만 둥근 보름달을 암시한다. 추석은 ‘가을 달’이다. 8월 가을 보름달이 추석(秋夕)이었다.

음력 8월 15일 명절을 언제부터 추석이라고 불렀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조선 초기 편찬된 ‘고려사’에서는 추석 때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그럼 최소한 고려 때는 추석이라고 불렀다. 고려 중기에 편찬된 ‘삼국삼기’에는 한자 ‘추석’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음력 8월 15일 명절을 우리는 어떻게 불렀을까? 모든 자료가 신라의 가배(嘉俳)에서 찾고 있다.

“신라 유리왕 때(서기 32년), 왕이 6부를 정하고서는 절반씩으로 나누어 두 부류로 삼고, 왕녀 두 사람에게 각각 부락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조직하게 했는데, 가을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락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게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게 하였다. 그리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성과의 다소를 살펴, 진 쪽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쪽에 사례하였다. 이렇게 하고서 가무와 온갖 놀이를 행하였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고 불렀다.”

가배(嘉俳)가 우리말 ‘가위’(가운데=가분데)의 한자식 표현이라고 하는데,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성의 막노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진 쪽은 술과 음식까지 마련해야 했다. 노동력 착취였다. 추석의 명절 축제 분위기는 엿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는 힘든 노동의 고단함의 대가였음을 이해한다면 가배는 분명 축제였다.

우리말 ‘가위’가 한자음 ‘가배(嘉俳)’로 표기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신라의 길쌈 게임 ‘가배’는 ‘보름달’과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우리말 ‘가위’는 ‘한’(大)과 결합하여 ‘한가위’가 되어 ‘한가운데’를 일컫고, 둥근 보름달 모양을 상기시킨다. ‘보름’은 ‘밝다’의 옛 명사형인 ‘보롬’이다. 밝고 둥근 대보름달 모양은 가운데를 둘러 품을 수 있다. ‘한가위’는 ‘한가운데’이고 곧 ‘대보름달’이다. 이것이 음력 8월 15일에 뜨는 대보름달로 한가위가 되었다.

따라서 한자 추석과 한가위는 전혀 다른 갈래의 어원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같은 날 같은 보름달을 둔 명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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