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과 커피 한 잔, 펠로시와 전화 한 통-박종철 경상국립대 교수
2022년 09월 05일(월) 00:45
2020년 신년 의회 연설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이 대통령 연설문을 짝짝 찢는 퍼포먼스가 전 세계 방송에서 화제가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내민 악수를 거절한데 대한 복수였다. 트럼프는 “대통령 문서를 찢은 것은 위법 행위”라며 노발대발했다. 펠로시 하원의원은 미국 정계에서 ‘구찌 장갑을 낀 철 주먹’이란 별명으로, 전투력 최강의 국회의원으로 장기간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1987년 하원의원 당선 이후, 반중·반북 성향으로, 의회 내의 1979년 수교 이후 미중 전략적 협력 노선을 미중 경쟁으로 교체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66년 낙선한 닉슨은 “끝장났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닉슨은 1966년 프랑스, 일본, 동남아 등에서 드골 대통령, 사토 에이사쿠 총리 등으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당시 이동원 외교장관은 닉슨과 면담을 건의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끝난 사람인데”라며 청와대에서 커피 한 잔만을 했다. 입장이 난처해서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와 이동원 장관은 저녁에서 장관들을 초대한 만찬을 추진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장관들을 청와대로 불러 저녁식사를 하면서 또다시 닉슨의 체면을 구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동원은 닉슨에게 기생집에 가는 것을 제안하였지만, 브라운 대사는 다음날 일정을 핑계로 반대하였다.

1968년 닉슨은 제 3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재임기간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키는 엄청난 성과를 일구어 냈다. 드골 임기 당시 1966년 나토(NATO) 동맹에서 탈퇴하여, 미국 정치인들이 그를 과대망상 환자로 치부했지만, 닉슨은 회고록에서 드골을 강한 의지의 영웅으로 묘사했다. 닉슨 취임 이후 외교 라인을 총동원하여 정상회담을 추진하였지만 6개월간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1968년 8월 방미 기간 박정희는 샌프란시스코 호텔에서 닉슨을 만나는 수치를 겪었다. 이동원 회고록에는 박정희는 당시 시시껄렁한 시골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하는 수치를 보이며, 속국의 제왕 대접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내가 아무리 1966년 닉슨이 방문했을 때 섭섭하게 대했기로서니 너무한 것 아니오”라고 했다. 한미 관계에 있어서 닉슨은 주한 미군 철군을 추진하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주한 미군 철군 문제가 논의되기도 하였다. 키신저 보좌관은 주은래 총리의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우려에 대하여, 자위대 간부가 국군을 만나고 있다는 기밀까지 설명해 주었다. 물론 이러한 심각한 안보 문제에 대하여 주은래는 김일성을 직접 만나서 전달해 주었다. 한반도 안보를 한국 지도자를 패싱하고 토론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동원은 “닉슨의 한국 방문 1박 2일은 우리 역사상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그 1박 2일이 주한 미군의 첫 철수를 낳았고, 그것은 박대통령에게 위기의식을 안겨 줘 이후 ‘10월 유신’ ‘핵개발’ 등 자신의 불안을 보전해 줄 악수를 두게 됐다”고 회고했다.

8월 초 낸시 펠로시의 싱가폴·타이완·한국·일본 방문 기간, 각국 지도자들은 일정을 변경하며 최상의 외교 행사를 개최하였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아시아 방문 기간 윤석열 대통령은 ‘그녀와 직접 면담하지 않은 유일한 지도자’라는 기사가 국제적 화제가 되었다. 보수 신문들의 비판이 거세었다. 이에 대통령실은 처음 휴가 기간이라고 해명했고, 곧바로 최영범 홍보수석이 ‘총체적으로 국익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의 파장으로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윤 대통령의 대미 외교를 칭찬하였고, 서방의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상당한 비판적인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5년 넘게 집요하게 중국을 공격하는 낸시 펠로시에 대하여 중국인들은 ‘늙은 마녀’로 부르고 있다. 의회의 한국 방문에는 한반도 평화에 발벗고 나섰던 그레고리 믹스 외교위원장, 앤디 김 등 아시아태평양 의원단이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펠로시 방문 10일 후 미국 의회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iton Act)를 통과시켰다. 한국 전기 자동차만 불이익을 보는 구조에 대하여 친한파 의원들은 이전과 달리 어떤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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