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관방천 징검다리에서-박 용 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08월 21일(일) 22:00
잠시 시간이 나거나 마음이 허전하면 담양에 간다. 담양은 가깝기도 하고 볼거리도 많다. 무엇보다 먹거리가 풍성해서 푸근한 고향 집 같다.

소쇄원과 환벽당은 선인들의 시심이 느껴지고, 창평 고샅은 옛 정취가 절로 난다. 죽녹원에서 부는 댓잎 스친 바람을 따라 읍내를 걸어도 좋다. 어디에나 대나무가 있고 시내를 따라 길게 둑이 있고 나무들이 있으며 햇볕에 그을린 지게를 짊어진 아버지와 고추를 막 따서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풍경이 있는 곳, 담양은 그런 것들이 딱 요소요소에 있는 것 같아서 꽉 찬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관방천에는 푸른 나무들과 국숫집이 있어서 좋다. 물레방앗간의 흰 빨래같이 길게 늘어진 하얀 국숫발이 떠오르는 곳, 정다운 옛 고향 풍경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슴아슴해진다.

관방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징검다리로 간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서 건넌다. 뛰고 걷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어린아이가 되어 건너본다. 그 옛날 투박한 돌도 불규칙한 간격도 아니지만 징검다리만으로 그리운 옛날의 것들이 되살아난다.

그때는 어느 마을에나 냇가가 있었고, 보 아래로 여울이 흘렀다. 그 여울에는 그 마을 앞 당산나무처럼 오래된 징검다리가 있었다.

소나기만 내려도 우린 그 징검다리를 떠올리며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마을에서 어르신 한 분이 마중을 나와 우리를 업어서 건네 주곤 했는데, 비에 젖은 아저씨의 등에서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비가 그치면 징검다리가 넓은 머리를 쏙 내밀었다. 그때부턴 스스로 건너야 했는데, 이끼가 끼어서 제법 미끄러웠다. 두려움의 대상이자 용기를 실험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만용을 부리면 안 된다는 따끔한 교훈도 얻는 곳이다.

징검다리를 능숙하게 건널 만큼 자란 후, 징검다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곳에서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는 일이 참 좋았다. 돌 사이는 유속이 빨라서 물고기들이 많았다. 피라미 버들치 납자루 등 많은 물고기가 모였다. 메기나 자라도 돌 틈 사이에서 보이곤 했다. 그러면 그 징검다리에 배를 깔고 얼굴을 물속에 넣고 눈을 뜬 채 물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손으로 참방거려 보기도 했었다.

그런 징검다리가 하천을 넓히고 정비하는 사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 유년의 유산 하나가 모두 없어진 것이다. 징검다리가 사라진 것은 교각이 대신할 수 없는 수많은 삶과 이야기들을 소실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발동기가 사라지고 물레방앗간이 사라졌다. 사라진 초가와 달구지와 함께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까지 뽑혀 나갔다.

그리운 징검다리, 여동생은 책가방을 메고 아장아장 건넜다. 건넛마을 노총각에게로 시집을 가면서 숙희 누나는 울면서 건넸다. 누구는 공장으로 누구는 진학을 위해 하나둘 떠났다. 작은아버지가 작은어머니를 업고 허겁지겁 읍내 병원으로 달려갈 때도 이곳을 지나셨고, 명절날이면 커다란 봇짐을 이고 지고 누나와 형들도 이곳을 통해 돌아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상여꾼들이 한 줄로 서서 상여를 메고 건넌 곳도 이곳이었고, 한번 건넌 망자는 이 길을 되돌아오지 못한다던 마을 사람들의 눈물이 흘러넘친 곳도 이곳이었다. 그 징검다리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를 때는 또 얼마나 아름답던가.

아침 안개 자욱한 냇가에서 삶을 시작하였고 장마철 빠른 유속처럼 사춘기의 방황도 흙탕물처럼 흘러갔지만, 가을날 맑은 수면이 깊은 산을 그대로 담듯 세상도 삶도 어느 정도 관조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징검다리 덕분이었다. 이제 저물녘 깊어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비운 마음의 배를 물결에 띄워 본다. 그때 그 징검다리는 아니지만, 관방천 징검다리는 그때 그 정취를 불러일으켜서 좋다.

그 물결이 내 가슴에 흐르고 나도 무사히 피안에 이를 수 있도록 가슴에 쉼표처럼 징검다리를 하나둘 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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