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하여-윤미경 동화작가
2022년 08월 19일(금) 01:00
“새 책 나왔다면서 책 한 권도 안 줘?”

“책을 왜 드려야 하는데요? 사셔야지요.”

“난 책 안 사는데. 새 책 나왔으면 선물해 줘야지, 무슨 책을 사라고 해.”

지식인이었으며 나름 문학에 관심이 있는 지인이 내게 하는 말이었다. 몇 번이나 되물었다. 왜 책을 안 사냐고. 그분은 내가 몹시 인색한 작가인 양 쳐다봤다.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뭔가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림책의 경우는 더 황당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글 밥이 적은 그림책은 돈을 주고 구입하기엔 아깝다고 한다. 언젠가 서점에서 어떤 여성이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 주며, 심지어 그림책을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하고는 책을 다시 판매대에 올 놓은 후 아무렇지도 않게 서점을 나가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공짜로 마시고 나간다면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는 범죄라는 걸 모두가 알면서 왜 이런 행위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까.

7년 전, 겁 없이 전업 작가를 꿈꾸며 하던 일을 접었다. 문득 휘몰아친 동화가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면서 발생한 참사였다.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기세 좋게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 대책은 없었다. 모아 놓은 돈은커녕 다달이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고 뚜렷한 좌표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막연하고 불투명했지만 다만 선명한 것은 ‘쓰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 하나였다.

전업 작가가 된 후의 삶은 처절했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써야만 한다’로 바뀌면서 날마다 커피잔에 시럽 대신 절박함을 타서 마셨다. 하루종일 어두운 카페에 들어앉아 있다 보니 비타민D가 결핍되어 안색은 파리해졌다. 그런 노력에 불구하고 생활은 점점 위태로워졌고 불면과 불안으로 정신과 약까지 처방을 받아야 했다.

지금도 가끔 주변인에게 묻는 말이 있다.

“내가 전업 작가 첫해 일 년 동안 글 써서 번 돈이 얼마인 줄 알아요?”

정답을 맞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가 얼마를 말하던 그 이하였다. 연봉 3만 원, 믿을 수 없겠지만 1년 동안 글 써서 번 돈은 고작 3만 원이었다. 이것이 대부분 작가들의 처절한 삶의 모습이다.

현재 나는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20여 권의 책을 출간하였지만, 여전히 생활은 불안정하다. 강연하지 않고 순수하게 인세로만 생활하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물질이 아닌 무형의 창조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써 가치를 인정받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많은 예술인들이 얼마나 더 잔혹한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지 끊임없는 회의와 갈등으로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이 글쟁이여. 허구헌 날 머리를 걸레 짜듯 쥐어짜고 사니라고 얼마나 고달프겄냐.”

친정 엄마는 글 쓰는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다른 집 딸들처럼 백화점 쇼핑이나 하고 외국으로 여행이나 다니는 팔자로 왜 살지 못하는지 혀를 끌끌 찬다.

작가도 직업이다. 직업이니 만큼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물론 절실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부의 탓만으로만 돌리며 많은 사람들은 방관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얼마나 예술을 학대하고 있는 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무단으로 도용되는 미술 작품들과 불법 복제되어 인터넷에 깔리는 음악과 저작권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당당한 문외한들이 범람하는 현실은 어찌해야 하는가.

다행히 내 주위에는 아직도 예술에 현혹된 사람들이 많다. 안락하고 편안한 삶 대신, 무모하고 남루한 삶에 대한 도전을 꿈꾸고 있다.

그들이 앞으로도 쭈욱 무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무모함에 많은 사람들이 작은 관심이라도 보태주시길 간절히 희망한다.

꿈꾸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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