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풍경-이중섭 소설가
2022년 08월 18일(목) 00:15 가가
장례식장을 떠난 지 두 시간 만에 고향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어머니 영정을 앞세우고 장의차에서 내렸다. 공터에 있던 나이 든 할머니들이 유모차와 캐리어를 끌고 영정 앞으로 모여들었다.
“두임아, 두임아! 이게 뭔 일이당가. 내 친구 두임아!”
문환네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담담했던 마음이 울컥해지며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다른 할머니들도 울면서 영정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속절없이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목이 메인 채 말을 못 했다. 캐리어에 앉아 있는 기수네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다. 조그만 마을이 일시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우리는 어머니를 보낸 자식의 죄책감에 하늘만 쳐다보았다. 영정을 든 조카를 앞세우고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허름한 옷차림의 누나가 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말도 못 한 채 악만 썼다. 노처녀에다 장애마저 있어 어머니 속을 밑바닥까지 뒤집어 놓기를 예사로 했다.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교회에서 잤다. 영정은 먼저 큰방을 거쳐 작은방을 지나 세면실과 부엌 그리고 건넛방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영정 속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집안을 하나하나 투시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유골함을 모시고 납골당으로 갈 시간이었다. 누나에게 함께 가자고 하자 막무가내 소리를 질렀다. 화가 잔뜩 났는지 방문을 꽝 잠갔다. 대화가 되지 않는 한 인간을 집에 남겨 두고 납골당으로 향했다. 지난 이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마을 어른들과 다툼이 있었다. 전통 제례 의식을 치르는 집안 납골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이 대부분 교회를 다녀서인지 그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기 전에 화장터에서 미리 시골 친구와 전화로 찬송가만 부르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도 이런 경우가 빈번해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무사히 어머니의 유골함을 아버지의 유골함과 한 공간에 나란히 안치시켰다.
“여기가 앞으로 할머니가 계실 곳이야.”
상복을 입은 조카들이 유골함이 놓인 장소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기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가 죽으면 들어갈 곳이고….”
미리 번호가 새겨진 네모난 공간을 열어 보였다. 조카들보다 아내가 더 유심히 살폈다. 먼지가 있는지 손으로 털어냈다. 뜻밖이었다. 지레 당신네 이씨 가문의 납골당에 왜 내가 들어가야 해, 하며 소리칠 줄 알았다.
이제 어머니의 유골을 납골당에 모신 가족들은 한시름 놓은 분위기였다. 광주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는 장의차 안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 보였다. 오고 가는 대화 중에 내 소설책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자기 장모 이야기는 많이 썼던데 내 이야기는 하나도 없더라.”
죽기 전에 어머니가 여동생에게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다들 웃었다. 아내가 그 말에 반가워서인지 어떻게 그 작은 글자를 읽으셨대요? 하며 끼어들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가족들이 어머니가 초등학교 때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농담부터 이런저런 얘기들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결국 며칠 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책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표지라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 이기적인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었다. 머리가 멍하고 몸은 뻐근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을 한 잔 마셨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멍하게 앉아 있는데 멀리 고향의 모습이 떠올랐다. 허리를 구부리고 집으로 돌아간 마을 할머니들의 모습이 겹쳤다.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누나의 모습도 이어졌다. 마을 뒤 언덕배기 납골당에 놓인 어머니의 유골함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오늘 밤 고향 할머니들은 망자인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제 다음 차례는 자신일지도 모르겠다고 몸을 뒤척일 터였다. 누나는 밤에 홀로 자는 것이 무서워 교회로 갈 때마다 자신만 남겨두고 떠난 어머니에게 씨부렁씨부렁할 것이다.
마을의 나이 든 어른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고향 풍경이 하나씩 사라진다. 이제 어머니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아련한 풍경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두임아, 두임아! 이게 뭔 일이당가. 내 친구 두임아!”
우리는 어머니를 보낸 자식의 죄책감에 하늘만 쳐다보았다. 영정을 든 조카를 앞세우고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허름한 옷차림의 누나가 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말도 못 한 채 악만 썼다. 노처녀에다 장애마저 있어 어머니 속을 밑바닥까지 뒤집어 놓기를 예사로 했다.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교회에서 잤다. 영정은 먼저 큰방을 거쳐 작은방을 지나 세면실과 부엌 그리고 건넛방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영정 속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집안을 하나하나 투시하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앞으로 할머니가 계실 곳이야.”
상복을 입은 조카들이 유골함이 놓인 장소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기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가 죽으면 들어갈 곳이고….”
미리 번호가 새겨진 네모난 공간을 열어 보였다. 조카들보다 아내가 더 유심히 살폈다. 먼지가 있는지 손으로 털어냈다. 뜻밖이었다. 지레 당신네 이씨 가문의 납골당에 왜 내가 들어가야 해, 하며 소리칠 줄 알았다.
이제 어머니의 유골을 납골당에 모신 가족들은 한시름 놓은 분위기였다. 광주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는 장의차 안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 보였다. 오고 가는 대화 중에 내 소설책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자기 장모 이야기는 많이 썼던데 내 이야기는 하나도 없더라.”
죽기 전에 어머니가 여동생에게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다들 웃었다. 아내가 그 말에 반가워서인지 어떻게 그 작은 글자를 읽으셨대요? 하며 끼어들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가족들이 어머니가 초등학교 때 우수한 학생이었다는 농담부터 이런저런 얘기들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결국 며칠 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책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표지라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 이기적인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날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깊었다. 머리가 멍하고 몸은 뻐근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술을 한 잔 마셨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멍하게 앉아 있는데 멀리 고향의 모습이 떠올랐다. 허리를 구부리고 집으로 돌아간 마을 할머니들의 모습이 겹쳤다. 텅 빈 집에 혼자 있을 누나의 모습도 이어졌다. 마을 뒤 언덕배기 납골당에 놓인 어머니의 유골함이 어둠 속에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오늘 밤 고향 할머니들은 망자인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제 다음 차례는 자신일지도 모르겠다고 몸을 뒤척일 터였다. 누나는 밤에 홀로 자는 것이 무서워 교회로 갈 때마다 자신만 남겨두고 떠난 어머니에게 씨부렁씨부렁할 것이다.
마을의 나이 든 어른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고향 풍경이 하나씩 사라진다. 이제 어머니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아련한 풍경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