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 전공 교수의 부재-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
2022년 08월 16일(화) 00:45
여름방학을 맞아 박물관을 찾아오는 가족들과 어린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이제 박물관은 놀이와 휴식의 장소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박물관의 문턱을 낮추는 것, 이것이 우리 세대 박물관인들의 과제이다. 어려운 설명문을 쉽게 쓰거나 관람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전시 내용을 구성하고 계기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아마도 이러한 박물관의 변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박물관의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박물관은 인간이 남긴 물건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고 연구·전시하며 그 의미를 전수하는 곳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의 경우,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임무가 있으며 매해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6000점 이상 등록하여 보관처를 마련한다. 이러한 활동은 전시와 교육, 행사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 영역이기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지만 박물관의 기본적인 활동이자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박물관의 기본 업무인 유물 관리·전시·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학예 연구직이라 하며 자연과학적 배경의 보존 처리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고학·미술사·역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립광주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점이 있다. 그것은 광주·전남 지역 대학에서 근현대 미술이 아닌 전통시대의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는 전공 교수가 없다는 것. 미술사라는 학문은 인간이 남긴 물건 중에서도 특별한 가치가 부여된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것으로 문화재의 형태·변화·연원·영향·교류 등을 다각도로 탐구하여 종국에는 사회적·사상적·미적·종교적 의미를 해석해 내는 것을 지향한다.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는 전통시대의 한국미술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서화사·도자사·조각사·공예사를 가리키며 박물관이나 문화유산 기관의 운영에 필수적인 분야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학회인 한국미술사학회의 정회원 264명 중에 현재 광주·전남의 대학에 적을 둔 정회원이 한 명도 없다는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물론 우리 박물관을 비롯한 지역의 연구소, 문화기관 등에 근무하는 한국미술사 전공자들이 소수 있지만, 대학에서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는 전공 교수가 없다는 것은 심각하다. 이는 우리 지역에 기반을 둔 전공자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우리 지역의 자랑인 도자기·서화·불교미술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양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관련 학술 정보들이 많이 공개되고 대중화되어 온라인 검색만으로 쉽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지역의 문화재에 관해서는 아직도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전문 연구자의 배출이 활발해야 새로운 원천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의 정체성을 파헤칠 수 있는 깊이 있는 연구가 축적될 수 있다.

문화재의 연구와 활용도 지역 간 경쟁의 시대가 되었기에 이러한 연구자들의 안정적인 활동이 없으면 우리 지역 문화 사업도 일회성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학문 후속 세대의 배출과 체계적인 연구 집단의 유무는 우리 지역 박물관이나 문화유산 기관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며 지역 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 연구와 후속 세대 양성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대학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의 문화유산 연구와 활용의 선순환을 이끌 한국미술사 전공 교수가 예향이라 자부하는 광주·전남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공간에 품격을 더하는 것은 문화이고, 그 문화의 정체성은 지역의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지역의 특별함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도에 펼쳐져 있는 어마어마한 문화유산의 보고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후속 세대를 배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때 그 변주와 활용 또한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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