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의 예술가들-김향남 수필가
2022년 07월 25일(월) 02:00 가가
그 섬, 낙월도(落月島)에 다녀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어쩐지 쓸쓸하기도 하고 낭만이 어려 있기도 한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사람 하나 안 보이는 한적한 해변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던 것, 그것 때문이다. 처음엔 갯벌의 흔한 풍경이겠거니 했다. 갯벌엔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고 저 흔적들 역시 그 증거쯤이라고 짐작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그곳은 질퍽거리는 갯벌이 아니고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한 모래 해변이었다. 남겨진 흔적들 역시 여러 생명체의 것이 아니라 모두 한 종의 것처럼 보였다. 모양과 크기는 달랐지만 동글동글한 작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진 그것은, 어찌 보면 토끼나 염소들이 싸놓은 ‘똥’ 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그것들로 만들어 놓은 꽃이나 도형 같기도 했다. 그런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무작위로 그려 놓은 것 같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패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맞히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무슨 비밀스러운 문장 같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페루의 나스카 유적을 본 적이 있다. 그 유적은 드넓은 사막 위에 거미나 나무, 삼각형이나 나선형 같은 370여 개의 동식물 모양과 기하학적 도형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울시 면적의 절반이 넘는다는 사막에 넓게 퍼진 문양들은 그 크기며 형태가 땅에서는 보기 어렵고, 드높은 공중에서 내려다봐야 드러날 정도라고 했다. 누가 왜 그렸는지 알 수 없어 유네스코는 ‘위대한 수수께끼’라고 했고, 어떤 학자는 ‘외계인의 흔적’이라고도 주장했다. 혹시 이 해변의 문양들 또한 그런 것일까? 이 한적한 바닷가에 내려와 한나절쯤 좋이 놀다 간 것은 아닐까? 그들만의 ‘난장’을 벌이고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궁금한 것을 나중으로 미룰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나 또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가 된 지 이미 오래, 재깍 손에 쥔 스마트폰을 열었다. 깨진 조각 하나라도 암호인 듯 입력하면 제아무리 생각 안 나는 것도 기꺼이 소환해 오지 않던가. 나는 몇 개의 조각을 검색창에 넣었다. 해변, 동굴동글, 알갱이…. 장님 문고리 잡듯 보이는 대로 밀어 넣은 빈약한 단어로도 내가 찾는 것과 흡사한 이미지들이 주르륵 떴다. 클릭 클릭했더니 우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새로운 정보들이 매달려 나온다. 드디어 나는 그 알갱이의 정체가 ‘엽낭게’라고 하는 불과 1센티 남짓한 작은 게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엽낭게는 조간대 모래사장에 구멍을 파고 무리 지어 살아가는 게의 일종이다. 썰물 때가 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십만의 군대처럼 일제히 먹이 활동을 벌인다. 양 집게다리로 모래를 집어 입 안에 넣은 뒤 머금고 있는 물과 함께 모래를 굴려서 유기물은 삼키고 모래는 뱉어 낸다. 그 양이 하루에 최대 자기 몸무게의 수백 배에 이른다. 요놈들은 눈자루를 자유로이 세웠다 눕혔다 할 수도 있다. 이 눈자루를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이용해 구멍 속에서도 밖을 훤히 볼 수 있다. 또 갈색 톤의 보호색을 띠고 있는데, 생김새가 영락없이 모래나 모래무늬 같아서 눈에 띄는 것이 오히려 용할 지경이다.
새롭게 알게 된 엽낭게는 해변의 청소부이자 독특한 예술가였다. 그들이 빚어놓은 무수한 모래 알갱이들은 정화의 흔적이며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품이 되었다. 방대한 화폭에는 하루 두 번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달이 차고 달이 기울 듯이 썰물 때면 생겨나고 밀물 들면 무너져도 짓고 또 짓고, 그리고 또 그렸다. 모래인지 무엇인지 구분도 안 되는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도 그 역사(役事)는 놀라운 것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한 섬은 고 조그만 것들의 숨결로 꽉 차 있거니와 그들이 이루어 놓은 세계는 저 먼 나스카 유적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신기하고 생생하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 섬에는 오늘도 수십만 마리의 엽낭게가 일제히 ‘예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앙증맞고 야무지게, 당차고 발랄하게 밀려온 잔해들을 정화하고 있을 것이다. 삼키고 뱉어 내며, 씻어 내어 수놓으며, 말하자면 ‘똥’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제 몸을 살리고, 제 삶의 터를 살리며, 제 삶의 무늬로써 뭇 생명을 살려 내고 있을 것이다. 삶으로써 예술을, 예술로써 삶을 일깨우고 있을 것이다.
엽낭게는 조간대 모래사장에 구멍을 파고 무리 지어 살아가는 게의 일종이다. 썰물 때가 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십만의 군대처럼 일제히 먹이 활동을 벌인다. 양 집게다리로 모래를 집어 입 안에 넣은 뒤 머금고 있는 물과 함께 모래를 굴려서 유기물은 삼키고 모래는 뱉어 낸다. 그 양이 하루에 최대 자기 몸무게의 수백 배에 이른다. 요놈들은 눈자루를 자유로이 세웠다 눕혔다 할 수도 있다. 이 눈자루를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이용해 구멍 속에서도 밖을 훤히 볼 수 있다. 또 갈색 톤의 보호색을 띠고 있는데, 생김새가 영락없이 모래나 모래무늬 같아서 눈에 띄는 것이 오히려 용할 지경이다.
새롭게 알게 된 엽낭게는 해변의 청소부이자 독특한 예술가였다. 그들이 빚어놓은 무수한 모래 알갱이들은 정화의 흔적이며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품이 되었다. 방대한 화폭에는 하루 두 번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달이 차고 달이 기울 듯이 썰물 때면 생겨나고 밀물 들면 무너져도 짓고 또 짓고, 그리고 또 그렸다. 모래인지 무엇인지 구분도 안 되는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도 그 역사(役事)는 놀라운 것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한 섬은 고 조그만 것들의 숨결로 꽉 차 있거니와 그들이 이루어 놓은 세계는 저 먼 나스카 유적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신기하고 생생하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 섬에는 오늘도 수십만 마리의 엽낭게가 일제히 ‘예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앙증맞고 야무지게, 당차고 발랄하게 밀려온 잔해들을 정화하고 있을 것이다. 삼키고 뱉어 내며, 씻어 내어 수놓으며, 말하자면 ‘똥’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제 몸을 살리고, 제 삶의 터를 살리며, 제 삶의 무늬로써 뭇 생명을 살려 내고 있을 것이다. 삶으로써 예술을, 예술로써 삶을 일깨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