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선 실내악단과 대한민국 민족음악제-이영조 작곡가, (사)한국코다이협회 이사장
2022년 07월 12일(화) 00:30 가가
지난 6월 25일 보성군 벌교읍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민족음악제 채동선 실내악단(대표 김정호)의 연주회에 필자는 작곡가로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음악 예술 행사의 대부분은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외국 대가들의 작품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한민국 민족음악제의 채동선 실내악단 연주회는 우리 음악계에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세대인 21세기에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를 내세우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15년간 해외에 영주하며 한국을 멀리서 뒤 돌아본 경험이 있는 필자는 지구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여질수록 우리에게는 자아라는 것이 확립되어야 타인을 만나 융합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더욱이 문화라는 것이 나의 그것과 타의 그것이 만나 부딪치면서 일으키는 새로운 불꽃에 의하여 인류 사회가 발전하는 것을 생각할 때 받아들이기만 하여서는 그 어느 한쪽이 문화적으로 종속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직시하여 왔다.
문화 교류에 있어 세계 예술사를 돌이켜 보면 세 가지 유형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수입한 문화와 자가 문화 양자 모두를 누린다. 수입 문화와 자기 문화와의 융합도 자연스럽게 시도된다. 둘째는 자기 것을 버리고 잊으며 수입 문화에 압도당한다. 앞서 언급한 문화의 종속화가 일어난다. 세 번째는 타 문화를 배척한다. 폐쇄된 민족주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거리 상점의 간판, 아파트 이름에서 우리 것을 찾기가 어렵다. 건축은 어떠한가. 초기 움막에서 우아한 기와집으로 발전하던 건축물들은 서양 문물의 도입 이후 전통 건축미는 실생활에서 상실되었다. 그 실용도와 기능은 매우 훌륭하지만 거기에 현대적 한국적인 미가 가미되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음악 분야에 있어서는 1885년께 미국 선교사를 통한 서양 음악의 도입 후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을 해 왔고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 무대에서 그들과 대등한 입지에 서는 위치에까지 와 있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 음악에 흥미를 갖고 그 깊이를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우리 것을 더 많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을 그들 앞에서 부르면 ‘그 곡이 혹시 이태리 가곡 아닌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태리 가곡이 우리 가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답습해 왔고 아직도 그러하다. 총체적인 자아 상실이 현실이다.
우리다운, 자아가 존립하는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꼭 국악기, 국악의 창법, 한국적 내음이 풍기는 작품만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주장 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 보고 읽고 연주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이 된 오선보와 악기, 연주 형태와 음악 형식을 통해서도 우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글로벌 시대의 우리 음악일 것이다.
전통 국악, 서양 음악과 우리 음악의 융합이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을 이루는 음악계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채동선(1901~1953) 작곡가는 서양음악의 도입기에 이미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 음악계에 발전을 가져온 큰 어른이다. 물론 바이올린을 전공하신 그분의 작품은 지금의 작곡학적 시각으로 볼 때 여러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 시대에 우리에겐 큰 씨앗을 뿌려 주심을 감사하고 자랑스러움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음악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과 정책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족음악제와 채동선 실내악단의 활약은 이를 자극하고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입증하고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우리 것을 경시해 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국악 음악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음악 교육의 체계인 수많은 음악대학 안에 기악과, 성악과 등과 같이 국악과로 작게 존재 할 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벌교는 내 생애에 처음 와 본 곳이다. 이 황량한 꼬막 펄의 언덕에 아름다운 채동선 음악당에서 지역민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키워 오신 채동선 실내악단 김정호 대표와 단원들 모두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음악 분야에 있어서는 1885년께 미국 선교사를 통한 서양 음악의 도입 후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을 해 왔고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 무대에서 그들과 대등한 입지에 서는 위치에까지 와 있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 음악에 흥미를 갖고 그 깊이를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우리 것을 더 많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을 그들 앞에서 부르면 ‘그 곡이 혹시 이태리 가곡 아닌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태리 가곡이 우리 가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답습해 왔고 아직도 그러하다. 총체적인 자아 상실이 현실이다.
우리다운, 자아가 존립하는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꼭 국악기, 국악의 창법, 한국적 내음이 풍기는 작품만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주장 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 보고 읽고 연주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이 된 오선보와 악기, 연주 형태와 음악 형식을 통해서도 우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글로벌 시대의 우리 음악일 것이다.
전통 국악, 서양 음악과 우리 음악의 융합이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을 이루는 음악계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채동선(1901~1953) 작곡가는 서양음악의 도입기에 이미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 음악계에 발전을 가져온 큰 어른이다. 물론 바이올린을 전공하신 그분의 작품은 지금의 작곡학적 시각으로 볼 때 여러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 시대에 우리에겐 큰 씨앗을 뿌려 주심을 감사하고 자랑스러움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음악을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능력과 정책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족음악제와 채동선 실내악단의 활약은 이를 자극하고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입증하고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우리 것을 경시해 왔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국악 음악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음악 교육의 체계인 수많은 음악대학 안에 기악과, 성악과 등과 같이 국악과로 작게 존재 할 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벌교는 내 생애에 처음 와 본 곳이다. 이 황량한 꼬막 펄의 언덕에 아름다운 채동선 음악당에서 지역민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키워 오신 채동선 실내악단 김정호 대표와 단원들 모두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