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아이들이 온다’-박용수 한신대 석좌교수·정치학 박사
2022년 07월 08일(금) 00:15 가가
요즘 광주 고려인 마을을 보면 놀라움과 경이로움 그 자체다. 지난 3월 처음으로 고려인 4세 최마르크 군(13살)이 광주에 왔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특별한 사례라 여겼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고려인 동포들의 귀환 행렬이 줄이었다. 최마르크 군의 첫 입국 후 100일 동안 무려 441명에게 항공권을 지원해 400여 명이 입국했다. 아직도 270여 명이 애타게 항공권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근 국가에 피난 중인 고려인들이 3000여 명으로 추산되니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다. 역사적 대사건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들을 작은 고려인 마을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면, 놀라움은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물론 그 바탕은 각계각층의 국민 성금이다. 고려인 마을(대표 신조야)의 고려인 귀환 돕기 모금운동에 7억 1000여 만 원이 모아졌다.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성금이다.
고려인 마을을 취재한 한 기자는 ‘광주 고려인 마을의 기적’이라며, ‘IMF 때 금 모으기 국민운동 이상으로 국격을 높이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정부 지원이 아니라, 순수 민간 차원의 모금 결과이니 더욱 자랑스런 일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국가의 기본 책무인데, 민간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게.
우크라이나 난민 수백만 명을 전폭 수용하는 유럽 국가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난민 폐쇄국으로 비판받는 일본조차 전용기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데려다 정착을 지원하는 모습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외교부가 피난 중인 고려인 동포들에게 여행 허가 조건을 완화해 주고, 할일 다한 것처럼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고려인 동포들의 절박한 귀환 요청이 줄을 잇는데도 실태 파악마저 외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고려인 동포 포용과 지원 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난민 문제가 아니라, 동포 문제로 풀면 되는데 꽉 막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데, 실망을 넘어 질타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의 국가적 위기를 어찌 극복할지 걱정이다.
이럴 때, 고려인 아이들이 한줄기 희망의 빛이다. 고려인 아이들 1000여 명이 고려인 마을에서 숨을 쉬고, 꿈꾸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주변 초등학교들이 고려인 아이들 덕분에 분교 전락 위기에서 벗어났을 정도다. 고려인 마을은 오후가 되면 왁자지껄 시끄럽다. 아이들이 골목과 공원에서 뛰노는 소리다. 예전 우리 동네 모습 그대로다. 고려인 어린이 합창단과 고려인 청소년 오케스트라단의 공연 무대는 언제나 관객들의 탄성을 부른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고 노래했다. 그렇다. 고려인들이 광주에 온 것은 연해주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역사와 한 맺힌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온 것이고, 그들의 삶과 문화, 예술이 함께 온 것이다. 동시에 고려인 아이들의 눈부신 미래가 함께 온 것이다. 그들이 장차 광주의 주역, 국가의 주역이 될 테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광주의 역사는 깊어지고, 문화예술은 풍성해지며, 미래는 한층 밝아졌다’는 말은 허투루 한 게 아니다.
오늘 고려인 마을은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려인 동포들의 법적 지위 회복과 안정적인 정착, 사회 적응 문제다. 고려인들의 주거 문제, 의료·취업·교육·복지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고려인 마을과 시민사회 역량으론 역부족이다.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들이니 살길이 막막하다. 정부에 간곡하게 요청한다. 제도적·체계적인 종합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 고려인 아이들이 펼쳐 보일 미래를 상상해 보라. 가슴 벅차지 않는가. 고려인은 물론 이주민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축복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고려인 동포 포용과 지원 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난민 문제가 아니라, 동포 문제로 풀면 되는데 꽉 막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데, 실망을 넘어 질타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의 국가적 위기를 어찌 극복할지 걱정이다.
이럴 때, 고려인 아이들이 한줄기 희망의 빛이다. 고려인 아이들 1000여 명이 고려인 마을에서 숨을 쉬고, 꿈꾸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주변 초등학교들이 고려인 아이들 덕분에 분교 전락 위기에서 벗어났을 정도다. 고려인 마을은 오후가 되면 왁자지껄 시끄럽다. 아이들이 골목과 공원에서 뛰노는 소리다. 예전 우리 동네 모습 그대로다. 고려인 어린이 합창단과 고려인 청소년 오케스트라단의 공연 무대는 언제나 관객들의 탄성을 부른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고 노래했다. 그렇다. 고려인들이 광주에 온 것은 연해주 항일 무장 독립투쟁의 역사와 한 맺힌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온 것이고, 그들의 삶과 문화, 예술이 함께 온 것이다. 동시에 고려인 아이들의 눈부신 미래가 함께 온 것이다. 그들이 장차 광주의 주역, 국가의 주역이 될 테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광주의 역사는 깊어지고, 문화예술은 풍성해지며, 미래는 한층 밝아졌다’는 말은 허투루 한 게 아니다.
오늘 고려인 마을은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려인 동포들의 법적 지위 회복과 안정적인 정착, 사회 적응 문제다. 고려인들의 주거 문제, 의료·취업·교육·복지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고려인 마을과 시민사회 역량으론 역부족이다.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들이니 살길이 막막하다. 정부에 간곡하게 요청한다. 제도적·체계적인 종합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 고려인 아이들이 펼쳐 보일 미래를 상상해 보라. 가슴 벅차지 않는가. 고려인은 물론 이주민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