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말’-박진영 공감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전남대 객원 교수
2022년 07월 06일(수) 00:15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 약식 기자회견)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취임식 다음 날인 5월 11일 용산 집무실 로비에 모인 기자들이 ‘첫 출근인데 한 말씀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에 답변한 것이 시작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기자회견을 꺼리고,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질문을 미리 받거나 질문의 수를 제한하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해 오던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시작됐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나 의견을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동안 진행된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을 돌아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인다. 윤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지 미리 충분히 준비하고 임하는 것일까? 윤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가 된 일이 자주 있다. 지난달 8일 한 기자의 ‘새 정부 주요 요직에 검사 출신이 전진 배치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해 뒷말이 무성했다. 6월 21일에는 고물가와 가계부채 심화 해법을 묻자 “근본적인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고 했다. 24일에는 전날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발표를 두고 “내가 보고받지 못한 게 오늘 아침 언론에 나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언이라고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과거에 했던 일을 지금 반복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논리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장관이 발표한 것을 대통령이 부정하면,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를 대하는 태도도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젊은 기자들에게 친근함을 드러내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질문이 없나 보지? 오늘은?” “어디서부터 할까?” 하는 반말투를 부정적으로 볼 사람도 없지 않겠다.

물론 내막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논란이 된 말들을 실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정치인들은 실언으로 비칠 말을 일부러 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발언의 정치적 효과를 정교하게 계산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대통령의 말은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은 온갖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 발언을 해석한다. 어떤 단어를 썼느냐 하나로도 의미를 다르게 읽는다. 어떤 질문에 답변하지 않아도 해석이 덧붙게 된다.

모든 말은 짧든 길든, 정교하게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필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피치의 성패는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느냐에 달려 있다. 말하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사말이나 축사 등을 미리 써 온다. 물론 책 읽듯 줄줄 읽어서는 듣는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 준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비록 짧더라도 말할 내용을 메모했다가, 연설을 하듯 전달한다. 종이에 적을 시간이 없으면, 머릿속에라도 정리를 해 둔다. 중요한 것은 잘 준비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3년 11월 19일,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한 연설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명연설로 남았다. 이 연설은 272 단어에 불과하고, 다 말하는데 3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을 만큼 짧았다. 링컨에 앞서 에드워드 에버렛 전 국무장관은 장장 2시간에 걸쳐 연설했지만, 지금은 그의 연설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링컨의 연설은 짧고, 주제가 분명했다. 무엇보다 감동을 이끌어내는 내용이다. 좋은 연설이 갖춰야 할 핵심이 잘 갖춰져 있다. 링컨이 잘 준비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연습과 훈련을 거쳐 능력을 키운 것이다. 그렇게 훈련된 사람들도 실제 스피치를 하기 전, 대부분 철저히 준비를 한다. 어떤 사안을 말하고, 어떤 사안은 말하지 않을 것인가? 해당 사안에 대해 몇 마디로 압축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사례나 비유 등)를 동원할 것인가? 어떤 말투와 표정, 제스처를 쓸 것인가? 이것이 그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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