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인가 예술인가-양관수 소설가
2022년 07월 05일(화) 00:05

양관수 소설가

어떤 고교 교감께서 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생들에게 대입 논술을 지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남녀공학인데 2학년들이었다. 수업은 학교 자료실에서 하는데 교실 한 칸이 강의실이고 다섯 칸쯤 자료실에 책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수강생은 열다섯 명인데 여학생이 열, 남학생이 다섯 명이었다. 여학생보다 남학생 숫자가 더 적었다.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데는 남성 호르몬이 여성 호르몬보다 열성인 듯하다. 그 차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벌어진다.

학생들은 동성끼리 앉기도 혼성으로 앉기도 했다. 그런 애들 사이에서 몸 장난은 늘 일어났다. 동성끼리 앉았건 이성끼리 앉았건 수시로 벌어졌다. 그중 특이한 건 여자애가 남자애를 자주 때리는 것이다. 여자애가 손바닥을 쫙 펴서 남자애 등짝이나 어깻죽지를 찰싹 소리 나게 강타했다. 소름이 끼치게 아플 것 같았다. 맞은 남자애가 얼마나 아플지 안쓰럽기까지 했다. 연타로 세 번까지 때리기도 했다. 남자애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그러는 게 아니었다. 두셋이 말장난하다 그냥 장난처럼 팍 퍽 팍 때렸다. 더 놀라운 건 남자애들의 한결같은 태도였다. 화를 내지 않았다. 보복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듯했다. 맞은 애가 때린 애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정도가 가장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여기에서 필자는 또 느낀다. 남성 호르몬이 열성이라는 걸. 남성 우월주의는 인류사의 오류라는 걸. 가부장제는 인류사의 오점이라는 걸. 남자애를 손바닥으로 때린 여자애들이 그걸 어디서 배웠을까. 집이지 어디이겠는가. 여자애들은 엄마가 아빠를 때리는 걸 보고 의식이 아닌 무의식 속에 잘 기억했으리라. 바위처럼 견디는 남자애들도 집에서 본 현상들을 무의식에 저장했을 것이다. 견디는 아빠의 모습을. 남성 호르몬의 몸가짐을. 인간의 DNA에 담긴 모계사회의 무의식적 발현이리라.

그러던 애들이 중간 쉬는 시간에 모두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책들이 진열된 높고 기다란 진열장 숲으로 스며든 것이다. 필자도 뻣뻣해진 다리를 풀어줄 겸 진열장 새를 걸었다. 문학 코너로 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찾아볼 셈이었다. 필자가 진열장 숲으로 들어갔다. 전등이 안 켜져 어두우나 사물은 다 파악할 정도였다. 꽂힌 책의 책등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으니깐.

애들은 진열장 틈새에 앉거나 누워있었다. 강아지들이 한데 어울려 꼬물거리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서로 장난하고 끽끽거리다가 때리는 게 유치원 애들 웅성거리는 거와 흡사했다. 필자는 문학 코너로 다가갔다. ‘채식주의자’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있을 만한 곳을 두세 번 훑어보아도 허사였다. 눈높이에서 다른 책을 발견했다. 밀란 쿤데라의 책들이었다. ‘느림’ ‘농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나란히 보였다. 좋은 책들이라 습관적으로 손이 갔다. 필자가 책 세 권을 두 손으로 잡아 뺐다.

책 빼낸 틈새로 맞은편 통로가 드러났다. 엉뚱한 상황이 보였다. 한 커플이 껴안고 있었다. 숨어서 키스하다 필자 눈에 띈 것이다. 남학생은 몸가짐을 다잡으며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을 몰랐다. 여학생은 달랐다. 필자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필자가 뜻밖의 상황에 놀랐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성 호르몬이 우성이라는 걸 느낀 필자는 빙그레 웃으며 빼낸 책들을 제자리에 그대로 꽂았다. 그들이 도로 책에 가려졌다. 필자가 발걸음을 죽이며 그 자리를 떴다. 수업이 끝나고 필자가 도서관 선생에게 말했다.

“소설 ‘채식주의자’가 안 보여요.” “야하다고 선생님들이 입고하는 걸 반대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보이던데요?”

선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책 숲 사이에서 포옹과 키스를 하다 필자랑 눈이 마주친 두 학생이 떠오른다. 필자는 그 둘의 잘잘못을 되짚으려는 게 아니다. 여자와 남자. 열성과 우성을 되새겨 보려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짚자면 부도덕하고 야한 개념이다. 그게 외설일까 예술은 아닐까. 혼란스럽다.

밀란 쿤데라 소설들은 도덕적인가? 안 야한가? ‘채식주의자’가 비도덕적이고 야한가? 아니면 서양 문학은 우성이고 한국 문학은 열성인가. 대한민국에는 드러내 놓고 말하기 곤란한 어떤 열성-집단 무의식이 굳게 버티는가. 책들 새에 스며들어 키스한 두 학생이 그립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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