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고마움을 찾아보세요-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07월 03일(일) 22:00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 당신, 이제 막 퇴근한 아버지 어머니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한 아들딸, 회사원 그리고 동료 여러분 진실로 고맙습니다. 수고한 만큼 밥도 맛있고 행복도 더 클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고자 바람막이가 되었다면 옷이 젖고 헤지더라도 좋은 일입니다. 하수구를 손보고, 청소하고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셨다니 수고하셨습니다. 고된 일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웃는 당신, 지금 웃는 당신의 선한 미소보다 더 맑고 고운 웃음도 없답니다.

삶은 경이롭고 수고롭습니다. 경이로움보다 저는 수고로움 쪽에 일부러 서곤 합니다. 선사시대의 신비를 체험하기 위해 화순 고인돌 공원으로, 우주비행의 현장을 보기 위해 나로도로, 섬을 찾아 완도로 가는 여행도 신비롭습니다. 허나 논둑의 풀을 베고, 감자를 심고, 목재소에서 나무를 나르고, 노인급식소에서 노인들을 위해 설거지하는 일은 더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창조된 물상의 신비로움보다 노동을 통해 얻는 체험, 땀과 노력으로 내가 만든 신비로움이 더 가치 있고 행복하게 하니까요. 세상에는 간혹 두 눈을 크게 뜨고도 보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밥상 앞에서 오늘 하루, 가족의 무사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밥상을 차린 아내의 수고에도 감사합니다. 상 위에 놓인 김치를 보고 어머니 김장하시느라 고생하셨다고요. 그런데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 밭을 갈고 두엄과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벌레를 잡고 뽑고 다듬고, 그리고 말릴 것은 말리고 빻을 것은 빻고 쪼갤 것은 쪼개고 그런 것이 몽땅 합쳐져서 온 김치입니다. 그러니 그런 노고를 읽고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과자를 사 주신 할머니께 감사하곤 합니다. 가게 주인에게 과자를 받고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는 아이들처럼 허투루 여기진 않으시겠지요. 과자를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땀 흘린 분들과 예쁘게 포장하신 분들에게까지 여러분의 고마움이 충분히 닿기를 바랍니다.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슈퍼 주인이나 정육점 주인뿐만 아니라 그 닭과 돼지 그리고 소를 소중히 키운 축산 농민에게도 감사해야겠지요.

기차를 타고서 즐겁게 가족 여행을 떠납니다. 승차할 때, 관련자나 기관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지만 뜨거운 여름날이나 북풍한설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철로를 살피고 열차 안전을 살피는 노동자는 놓치기 십상입니다. 당신의 쾌적한 안녕을 위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는 청소 아주머니에게도 관심을 보여주세요. 지금 당신이 포근한 의자에 앉아서 고향 어머니에게 가거나 멋지게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 누군가의 수고로움 덕분일 겁니다.

가족과 맛있게 저녁을 들고 계시지요. 밥상 위에는 저 먼 남쪽 지역 농민들의 땀과 기꺼이 풍랑을 마다하지 않고 먼바다까지 나선 어민의 노고 없이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밥 한술에도 볍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벼를 베서 말린 농부의 수고 말입니다. 거기에 그 쌀 한 톨이 될 때까지 바람과 비와 천둥, 햇살은 또 어떻습니까. 어디 이뿐입니까. 밥상 하나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렇게 허다할진대, 진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또 우리 삶에서 얼마나 많을까요.

혀끝으로 전해오는 미각 속에는 어머니의 사랑, 친구의 봉사, 이웃의 헌신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자리하고 있지요. 내가 오늘 이 삶의 건널목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 보이지 않은 사랑이 있어서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혹시 청맹과니처럼 두 눈을 뜨고도 일부러 외면하지는 않으셨는지요.

물론 지구가 돌아가고 그래서 밀물과 썰물이 생기고 해와 달이 바뀌고 계절이 순환하는 일까지 고마워할 필요가 있느냐고 합니다마는 그나저나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고마운 일을 찾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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