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와 하루-박용수 수필가·광주동신고 교사
2022년 05월 29일(일) 22:30 가가
안경 너머로 무언가 윙윙거린다. 하루살이다. 하루살이를 보면서 누구나 궁금해 한다. 정말 하루살이가 하루밖에 살지 않는지. 그래서 하루살이를 불쌍히 여겼다. 고작해야 하루 이틀 사는 하루살이, 내일이 없는 그들과 달리 우린 마음껏 오늘을 낭비하며 호기를 부렸다.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환갑이다. 올해 우리가. 몇 해 전만 해도 동창회다 해외여행이다 운운하며 우쭐했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요즘 누가 환갑 잔치하느냐며 우리끼리 소박하게 지내잖다. 흰머리도 부쩍 늘었고 노송 껍질같이 목주름이 장난이 아니다. 요양원 가지 않으려면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며 부쩍 노인 티를 낸다.
청춘이 없지 않았다. 누가 아파트 평수를 늘렸고 건물을 샀으며 승진을 하였다며 떠들었고, 심지어 누군 애인이 몇 명이고 요즘엔 누가 바람을 피운다며 수군거렸다. 그때가 봄날이었다.
봄날은 짧다. 수많은 하루살이가 군무를 벌이던 여름날도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어느새, 팔다리 무릎이 아프다고 한숨을 쉰다.
바람이랄까. 한바탕 휙 불고 지나가 버린 봄바람 같은 것이 청춘이다. 무더운 여름날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사라져 버린 것이 중년이었던 것 같다. 누군 퇴직을 했고, 또 사업에 망해서 귀향했고, 또 누군 부모 병간호로 바쁘단다. 벌어둔 돈은 없고 들어갈 일만 생긴단다. 이제 초겨울인데 마치 한겨울인 양, 모두 매운 겨울 걱정을 한다.
꼭 하루 같다. 육십여 년이, 간혹 열심히 산다고 촌분을 아껴 산다고 했건만,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 하루이고 그 하루가 육십 년이었다. 정치적으로 시비를 가르고, 종교적 이념으로 악다구니를 쓰고, 재산이나 자식 문제로 낯을 붉혔던 일들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가로등 불빛을 향해 무더기로 날아드는 하루살이 떼를 보면서, 하루살이라고 그 얼마나 조롱하며 깔보았던가. 실상 내 삶 역시 하루와 하루가 합해서 한 달이 되고 십 년, 백 년이 된다 해도 우리의 삶 또한 그와 다름없는 하루살인 것을.
저 불꽃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용기 또는 무모함이 자기 세계가 옳다고 우기던 우리의 무모함과 그리고 늙었다고 하는 신세 한탄과 무엇이 못하단 말인가.
그랬다. 사춘기엔 적당히 방황하고, 결혼해서는 아이 키우기 바빴고, 좀 시간이 생겼다고 잠시 낮잠 좀 자고 나니 60년이 물 흐르듯 가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시간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순간’이라던 간디의 말처럼 얼마나 난 내 삶을 진중하게 성찰해 보았던가. 한없이 가벼움만 찾아 웃고 마시고 잠자는 본능을 추구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길들어 산 나야말로 수백 수천 마리 하루살이였던 것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하루살이에게 배운다. 하루를 살기 위해, 한순간을 비상하기 위해, 수중과 지상에서 스무 번 넘는 탈피, 그 무던한 준비와 기다림, 그리고 뜨거운 사랑, 전쟁보다 더 치열하게 하루를 사는 법을. 본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하루가 단 한 번만이라도 그보다 나은 바 없다.
환갑이다. 올해 우리가. 몇 해 전만 해도 동창회다 해외여행이다 운운하며 우쭐했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요즘 누가 환갑 잔치하느냐며 우리끼리 소박하게 지내잖다. 흰머리도 부쩍 늘었고 노송 껍질같이 목주름이 장난이 아니다. 요양원 가지 않으려면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며 부쩍 노인 티를 낸다.
청춘이 없지 않았다. 누가 아파트 평수를 늘렸고 건물을 샀으며 승진을 하였다며 떠들었고, 심지어 누군 애인이 몇 명이고 요즘엔 누가 바람을 피운다며 수군거렸다. 그때가 봄날이었다.
꼭 하루 같다. 육십여 년이, 간혹 열심히 산다고 촌분을 아껴 산다고 했건만,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 하루이고 그 하루가 육십 년이었다. 정치적으로 시비를 가르고, 종교적 이념으로 악다구니를 쓰고, 재산이나 자식 문제로 낯을 붉혔던 일들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가로등 불빛을 향해 무더기로 날아드는 하루살이 떼를 보면서, 하루살이라고 그 얼마나 조롱하며 깔보았던가. 실상 내 삶 역시 하루와 하루가 합해서 한 달이 되고 십 년, 백 년이 된다 해도 우리의 삶 또한 그와 다름없는 하루살인 것을.
저 불꽃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용기 또는 무모함이 자기 세계가 옳다고 우기던 우리의 무모함과 그리고 늙었다고 하는 신세 한탄과 무엇이 못하단 말인가.
그랬다. 사춘기엔 적당히 방황하고, 결혼해서는 아이 키우기 바빴고, 좀 시간이 생겼다고 잠시 낮잠 좀 자고 나니 60년이 물 흐르듯 가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시간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순간’이라던 간디의 말처럼 얼마나 난 내 삶을 진중하게 성찰해 보았던가. 한없이 가벼움만 찾아 웃고 마시고 잠자는 본능을 추구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길들어 산 나야말로 수백 수천 마리 하루살이였던 것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하루살이에게 배운다. 하루를 살기 위해, 한순간을 비상하기 위해, 수중과 지상에서 스무 번 넘는 탈피, 그 무던한 준비와 기다림, 그리고 뜨거운 사랑, 전쟁보다 더 치열하게 하루를 사는 법을. 본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하루가 단 한 번만이라도 그보다 나은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