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부른 노래-김향남 수필가
2022년 05월 09일(월) 01:00

우리는 한창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가톨릭 재단인 우리 학교는 5월이면 해마다 ‘성모성월’ 행사를 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에 펼치는 합창경연대회와 촛불 행사였다. 특히 합창경연대회는 그 열기가 대단했다. 수업이 끝나면 하교도 미루고 맹연습을 했다. 반마다 지정곡(성가)과 자유곡이 있었는데 우리가 택한 노래는 ‘사랑하올 어머니여’로 시작하는 성가와 ‘울산 아가씨’라는 경상도 민요였다.

성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저 멀리 ‘동해나 울산’ 지역의 민요를 부르게 됐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노래에 국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르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따질 일은 아니겠다. 하여간 그 곡조며 노랫말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후 딱히 부를 일도 없었건만, 문득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면 놀라움을 넘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게 내 안에 있었단 말이지? 어디에 이런 노래가 있었던 거야? 게다가 하나도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니. 아마도 내 몸은 매우 우수한 저장고이거나 아주 안전한 은신처쯤 되는 듯싶다. 나는 박자를 맞춰 가며 한 곡을 야무지게 뽑아낸다. “동해나 울산으은 잣나무 그느으을 경치도 좋지만 인심도 좋구요~”

지휘를 맡은 세진이는 노래를 잘했다. 특히 그 애가 부르는 ‘세노야’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노래라고는 기껏 음악 시간에 배운 정도나 알고 있던 나에게는 전혀 딴 세상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세진이는 세상을 다 꿰뚫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노래에는 세상의 고뇌와 슬픔 같은 것들이 애틋하게 스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들을 죄다 감싸 안고 있는 듯도 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슬퍼지기도 했지만, 왠지 슬그머니 주먹이 쥐어지기도 했다.

세진이는 지휘도 잘했다. 우리 반 60명의 시선은 모두 지휘봉을 들고 있는 세진이에게로 향했다. 세진이의 표정, 세진이의 손끝, 세진이의 몸짓에 따라 우리는 온전히 한 덩어리가 되었다. 우리의 목소리는 작았다가 컸다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세차게 폭발했다가 다독이듯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우리의 실력은 날로 좋아졌다. 이 정도면 대상도 되지 않을까 부푼 꿈을 꿔 보기도 했다. 며칠 후면 경연대회가 열리고 그 밤 촛불행사를 끝으로 한 달간의 축제는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노래 연습에 더욱 힘을 쏟고 있었다. 세진이의 지휘봉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몇 번씩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오셨다. 그러나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선생님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급히 우리를 제지했다. 당장 연습을 중지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우리는 가방을 챙겨 귀가를 서둘렀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을 때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은 그야말로 난리가 나 있었다. 길 한복판에 탱크가 지나가고 군인들이 올라타 있었다. 전쟁이 난 건가? 이런 게 전쟁인가? 온몸에 철렁 공포가 엄습해 왔다. 버스를 탔는지 못 탔는지, 걸었는지 뛰었는지 모르게 겨우 집에 왔다.

합창경연대회를 했는지 못 했는지, 그날 밤 촛불 행사를 했는지 못 했는지도 기억에 없다. 내 기억은 한창 노래 연습을 하고 있던 그때 그 교실과 어서 집으로 가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 그쯤에 멈춰 있다. 후다닥 가방을 챙겨 길거리로 나왔을 때의 그 무시무시한 광경도 잊히지 않는다. 우악스럽게도 굴러가던 커다란 바퀴와 모든 것을 뭉개버리고 말 것 같은 험상궂은 광경이 맑은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시커먼 잿빛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학교에 가지 못했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한창일 때야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들려오는 뉴스는 황당하기만 했다. 분명히 내 눈으로 봤는데도 우리 동네 오빠들(청년들)이 ‘폭도’로 불리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내 귀를 의심했지만, 사실을 전한다는 ‘뉴스’가 그러하니 귀신도 곡할 노릇이었다. 오빠들은 인근의 학교 버스를 타고서 항거에 나섰고, 사람들은 주먹밥을 건네며 격려하고 응원했다. 어디를 봐도 ‘폭도’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마침 나도 그 장소에 있었는데, 그 훤한 일이 너무 쉽게 뒤바뀌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또 그때가 돌아왔다. 그 교실, 그 거리, 그 함성이 눈앞인 듯 훤하다. 못다 부른 노래를 다시금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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