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05월 02일(월) 00:30 가가
잠 못 들고 나온 밤이다. 늦은 밤인지라 사위가 고요하다. 밤이라지만 자세히 보면 어둠도 강물처럼 짙고 옅은 깊이가 있다. 옅은 곳을 골라 걸으며 갈 길을 간다. 멀리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다. 화사한 벚꽃이나 살구꽃도 때론 빛이 되곤 한다.
야심한 시간에 갈 곳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구름에 달 가듯 마실 길에 나선다. 이웃집 창문에 불이 켜졌다. 누군가 귀가를 기다리는 그 등불이 내 야간 산책의 길라잡이가 된다.
밤에 홀로 걷는다. 고독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쓸쓸하고 애잔할 여생을 생각하면서 징검다리를 걷듯 조심조심 나아간다. 힘이 빠지고 꿈도 없어지는 노년은 초저녁같이 희붐한 시기이다. 절망을 이기려고 애써 절망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고샅의 포근한 공기가 나를 감싸준다. 은은한 달빛에 반사된 야경은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구성지다 못해 애를 태우고, 배꽃 향기는 그윽하다. 닫혔던 귀와 코가 열리는 시간이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또 아버지가 떠난 지금, 머지않아 나도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순명의 길이다. 젊음이 빠져나간 몸을 허무와 공허가 밤공기처럼 감싼다. 착잡한 마음이다. 열심히 산들, 하루를 더 산들 죽음 뒤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단한 바위나 쇠붙이에 이름을 새긴들 정작 실체가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순환의 한 점에 있었다는 것, 지금 이렇게 생을 사유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를 위안한다.
그때 내 앞에서 누군가 깜짝 놀란다. 고라니다. 먹이를 찾아 골목까지 내려와 바지런히 쏘다닌다. 놀란 이는 나련마는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어쩜 우린 미물이라고 하지만 녀석 또한 이 야심한 시간에 자신의 생에 열중하지 않는가.
고샅을 걷는다. 간혹 이야기 소리가 나는 집도 있지만, 텔레비전 소리만 나는 집은 노인 혼자 사는 집이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건너는 중이다.
깜깜한 밤이다. 바둑을 복기하듯 하루를 되돌아본다. 어둠은 시각과 입에 의존했던 나를 더 낮고 겸손하고, 성숙하게 살아가라고 나를 깨운다. 무엇보다 밤에는 감성이 활짝 열린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고 수학적 시간이라면 밤은 순전히 서정의 시간이 된다. 눈과 귀를 앞세워 머리로 살았던 혼돈의 낮과 달리 밤은 시나브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사는 찰나가 된다. 구름에 숨었다 새롭게 나타나는 달처럼, 나를 정화해 본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세 /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깊어가는 어둠만큼 회한과 상념도 깊어간다. 하얀 달빛처럼 수북하게 쌓인 세월, 그 속에 배꽃처럼 활짝 핀 청춘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 그리운 시절이다. 지금 어디서 잘살고 있을지, 혹여 그도 나를 생각하지는 않는지. 아슴아슴 그녀 모습이 떠오른다. 흙마루에 발을 헛디뎌 발목을 다친 어머니도 생각나고, 회사 일로 정신이 없을 아들 녀석도 떠오른다. 그러면서 나는 또 내일 어디에 있을지, 이런저런 상념을 하면서 밤길을 걷는다.
‘인생 백 년을 사는 사람은 없건마는 부질없이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말을 모르는 바 아니나 감성 없이는 잠 못 들고 밤거리를 배회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진중한 삶이다.
밤길을 걷는다. 삶은 중량도 가치도 달기 어렵구나. 달은 많이 이울었고, 배꽃도 하얗다. 고샅을 돌고 또 걷는다. 마음도 가벼워졌고 제법 힘도 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밤에 홀로 걷는다. 고독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쓸쓸하고 애잔할 여생을 생각하면서 징검다리를 걷듯 조심조심 나아간다. 힘이 빠지고 꿈도 없어지는 노년은 초저녁같이 희붐한 시기이다. 절망을 이기려고 애써 절망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고샅의 포근한 공기가 나를 감싸준다. 은은한 달빛에 반사된 야경은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소쩍새 울음소리는 구성지다 못해 애를 태우고, 배꽃 향기는 그윽하다. 닫혔던 귀와 코가 열리는 시간이다.
고샅을 걷는다. 간혹 이야기 소리가 나는 집도 있지만, 텔레비전 소리만 나는 집은 노인 혼자 사는 집이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하루를 건너는 중이다.
깜깜한 밤이다. 바둑을 복기하듯 하루를 되돌아본다. 어둠은 시각과 입에 의존했던 나를 더 낮고 겸손하고, 성숙하게 살아가라고 나를 깨운다. 무엇보다 밤에는 감성이 활짝 열린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고 수학적 시간이라면 밤은 순전히 서정의 시간이 된다. 눈과 귀를 앞세워 머리로 살았던 혼돈의 낮과 달리 밤은 시나브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사는 찰나가 된다. 구름에 숨었다 새롭게 나타나는 달처럼, 나를 정화해 본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세 /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깊어가는 어둠만큼 회한과 상념도 깊어간다. 하얀 달빛처럼 수북하게 쌓인 세월, 그 속에 배꽃처럼 활짝 핀 청춘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 그리운 시절이다. 지금 어디서 잘살고 있을지, 혹여 그도 나를 생각하지는 않는지. 아슴아슴 그녀 모습이 떠오른다. 흙마루에 발을 헛디뎌 발목을 다친 어머니도 생각나고, 회사 일로 정신이 없을 아들 녀석도 떠오른다. 그러면서 나는 또 내일 어디에 있을지, 이런저런 상념을 하면서 밤길을 걷는다.
‘인생 백 년을 사는 사람은 없건마는 부질없이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말을 모르는 바 아니나 감성 없이는 잠 못 들고 밤거리를 배회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진중한 삶이다.
밤길을 걷는다. 삶은 중량도 가치도 달기 어렵구나. 달은 많이 이울었고, 배꽃도 하얗다. 고샅을 돌고 또 걷는다. 마음도 가벼워졌고 제법 힘도 난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