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유-박용수 수필가·광주동신고 교사
2022년 04월 18일(월) 03:00
맑은 하늘, 적당한 실바람. 가로수에도 공원과 캠퍼스에도 봄이 찾아 앉았다. 보기 좋고, 걷기도 좋고 사색하기는 더욱 좋은 때다.

창가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햇볕과 바람 속에 봄이 담겨 있다. 독서는 글자가 아닌 생각을 읽고 사유를 찾는 일이다. 작가의 삶과 내 삶을 견줘 본다. 봄바람이 녹음으로 파랗게 번지듯 작가와 마음이 나를 파릇파릇 물들인다. 내일은 섬진강이나 고흥 바다를 들러 볼 참이다.

요즘은 깜짝깜짝 놀랄 일이 많다. 재벌이 성과금으로 수천억을 받았다느니, 누가 퇴직금으로 수십억을 받았다고 우리의 가벼운 월급봉투를 놀린다. 또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수십억대 수입과 연봉을 보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나고 나는 더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친구가 농장을 새로 샀다고 오란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되는 산기슭이라는데, 적당하게 채소도 가꾸고 닭과 토끼도 키우겠단다. 주말이면 삼겹살도 굽고, 노래도 부르자며 덧붙여 몇 년 후에는 두세 배 오른다며 흥이 났다.

그럴 때면 가볍게 배낭을 메고 들판으로 나선다. 빈들을 보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탐을 낸다고 얻어질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는 부끄러운 탐욕이 내 안에 기웃거리는 것을 성찰한다. 작은 소출에도 감사하면서 봄맞이 준비를 서두르는 농부들을 보면서 나를 다독이고 응원한다.

창고에 여러 가지 미술품을 소장한들 어찌 내 것이고, 책장에 장서가 많다고 한들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가꾸지 않고 밟지 않는 땅과 살지 않는 수십 채의 건물과 집을 가졌다고 한들 어찌 자기 것이란 말인가.

어느 스님이 역설한 무소유는 진정한 소유가 아닐지 모른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보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느끼고 내려놓을 수 있는, 필요에 따라 들었다 놓을 수 있는 관계가 진짜 소유가 아닐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어느 그릇에나 자유롭게 담기는 물처럼, 내 것과 네 것이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 외물에 현혹되지 않고 한 평 땅도 만 평으로 느끼고 공유할 줄 아는 인식을 가진 이가 부자이고 진정한 소유자는 아닐까.

자신의 땅을 내놓으라는 점령군들의 협박에 답한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말이 떠오른다. 어떻게 바람과 구름과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조상들의 혼과 숨결이 담긴 산과 들판을, 형제이자 자매인 나무와 강물을 어찌 사고판다는 말인가.

밟고 가꿔야 토지이고, 읽고 소화해야 책인 것처럼, 소유권을 가졌다고, 내 서재에 꽂혀 있다고 모두 내 것은 아니다. 그러니 땅이나 집을 빌렸든 잠시 머물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의 것이고, 책은 읽고 공감하고 감상하는 이의 것, 그 사람이 진짜 주인이다. 그러니 응당 도서관이나 공원도 찾아 즐기는 이의 것이고 앞산과 뒷산도 즐겁게 감상하고 산책하는 이의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무등산도 품에 안을 때 내 것이고, 남쪽 바다를 보며 가슴을 활짝 펴고 내 것으로 여길 때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봄바람이 싱싱하고 산뜻하다.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하고 있다. 이것들은 소유하기보다 소요하고, 투기로 노리기보다 마음으로 누리는 사람이 진짜 주인일 것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들 하지 않던가. 온 하늘과 바다, 들판이 내 것이거늘 무엇을 부러워할 일인가. 산도 들판도 그리고 푸른 하늘, 맑은 바람도 내 안에 감상하고 간직하는 것, 그렇게 심중에 간직하는 것, 그 속에서 즐거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게 진정한 소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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