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사업회 ‘오방 최흥종 연구’ 펴내, 베풂의 삶 조명
2022년 04월 13일(수) 19:50 가가
호남 개화의 선구자 YMCA 창설
오방 최흥종(1880~1966)은 ‘광주의 아버지’라 일컫는다. 그는 목회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였다. 또는 신간회 광주지회장을 역임했으며 교육자로도 족적을 남겼다.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홍성사)를 쓴 이덕주는 최흥종에 대해 “별세하였을 때 광주뿐 아니라 전국에서 문둥병환자, 결핵환자, 걸인 수백 명이 몰려와 “아버지가 가시면 누가 우리를 보호해 줍니까!”하고 울면서 상여를 끌었던 전설적인 사회사업가”라고 평한다.
그만큼 최흥종은 ‘광주의 아버지’라는 별칭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방’이라는 호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명예욕, 물질욕, 성욕, 식욕, 종교적 독선 5가지 욕심을 버린다’라는 의미다. 오방은 ‘작은 자’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버렸던 사람이다. 오늘날 그의 삶과 정신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만큼 오늘 사회가 혼탁하고 물질만능 위주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방 최흥종의 삶과 정신을 조명한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오방기념사업회가 엮은 ‘오방 최흥종 연구’(태학사)는 병들고 여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오방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호남지방 개화의 선구자로 3·1운동에 참여했으며 YMCA를 창설했던 최흥종의 역동적이면서도 베풂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저자로 오방의 손자인 최협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를 비롯해 모두 8명이 참여했다. 책에는 ‘호남 교회 형성 인물, 최흥종 목사’(한인수 경건신학연구소장), ‘오방 최흥종의 생애와 기독교 민족운동’(한규무 광주대 교수), ‘호남 교회사에서 복음적 사회운동에 대한 한 연구’(차종순 전 호남신학대 총장),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의 성찰과 사명’(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오방과 노자’(양회석 전남대 명예교수), ‘오방 최흥종 선생과 ‘광주읍 가옥 철거구 궁민구제연구회’(정경운 전남대 교수), ‘경양방죽으로 본 최흥종 목사의 도시 공공성과 비전’(조용준 조선대명얘교수) 등이 담겨 있다.
최협 교수는 발간사에서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논문은 오방 최흥종 선생의 삶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과 실천이 참으로 광범위한 영역에 펼쳐 있어 어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며 “오방 선생은 1908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와 동행하는 길을 나선 후 다시는 뒤를 돌아보시지 않았다. 그 후 선생이 걸어간 삶의 여정은 한센병 환자처럼 낮은 자들을 형제로 삼아 일생을 통해 한번도 그들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홍성사)를 쓴 이덕주는 최흥종에 대해 “별세하였을 때 광주뿐 아니라 전국에서 문둥병환자, 결핵환자, 걸인 수백 명이 몰려와 “아버지가 가시면 누가 우리를 보호해 줍니까!”하고 울면서 상여를 끌었던 전설적인 사회사업가”라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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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기념사업회가 엮은 ‘오방 최흥종 연구’(태학사)는 병들고 여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오방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호남지방 개화의 선구자로 3·1운동에 참여했으며 YMCA를 창설했던 최흥종의 역동적이면서도 베풂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최협 교수는 발간사에서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논문은 오방 최흥종 선생의 삶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과 실천이 참으로 광범위한 영역에 펼쳐 있어 어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며 “오방 선생은 1908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와 동행하는 길을 나선 후 다시는 뒤를 돌아보시지 않았다. 그 후 선생이 걸어간 삶의 여정은 한센병 환자처럼 낮은 자들을 형제로 삼아 일생을 통해 한번도 그들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