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독립 넘어 ‘K-품종’ 수출까지-이종률 농협경주교육원 교수
2022년 04월 12일(화) 23:15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확이 급감하면서 세계 식량 가격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옥수수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곡물 생산량이 30∼5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고 우크라이나 농업 컨설팅업체 ‘우르크아그로컨설트’는 지난해 4190만 톤이었던 옥수수 수확량이 올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00만 톤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3월 식량 가격 지수는 전달보다 12.6% 오른 159.3포인트를 기록해 1996년 지수 도입 이래 두 달 연속 최고치를 갈아 치웠으며 곡물 가격 지수도 지난달보다 무려 17.1%나 상승했다.

이 와중에 종자 로열티마저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을 겪고 있다. ‘비타민C의 여왕’으로 겨울부터 봄까지 전 국민이 즐겨 먹는 과채류인 딸기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에 막대한 로열티를 내는 처지였다. 2005년까지 국내 딸기 재배 면적의 80%는 일본 품종이 차지했고 국내 육성 품종 보급률은 9.2%에 불과했다.

이 사례를 계기로 식량 주권을 지키고자 품종 독립을 넘어 수출까지 내다보고 우리 농업계는 품종 육성에 나섰다. 그 결과 ‘설향’을 시작으로 ‘매향’ ‘금실’ ‘아리향’ ‘킹스베리’ 등 다양한 국내 육성 품종들이 속속 개발돼 보급됐고 9.2%에 불과했던 국내 육성 품종 보급률은 2020년 말 기준 96.3%까지 높아졌다. 딸기 종자 독립이라는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이제 K-딸기 품종은 베트남·미얀마·미국·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재배되며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한때 경기·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주를 이루던 ‘추청’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일본 벼 품종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신 그 자리에 ‘해들’ ‘알찬미’ ‘참드림’ ‘맛드림’ 등 밥맛 좋은 고품질의 신토불이 육성 벼 품종들이 심어지고 있다. 국내 소비량의 99%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밀의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육성된 우리 밀 품종 개량도 고무적이다. 수입산 밀에 떠밀려 우리 고유의 맛을 모르는 MZ세대를 위해서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수한 국내 육성 품종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주요 품목의 국산화율은 지속해서 높아지고 로열티 지출액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비록 일부지만 국내 육성 품종들은 해외에서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다. 가시 없는 장미 ‘딥퍼플’과 녹색 장미 ‘그린 뷰티’ 등 14개 품종은 주당 0.4달러의 로열티를 받으며 최근 7년간 약 24억 원을 벌어들였고 일본 품종인 ‘한라봉’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감귤 ‘탐나는 봉’도 이미 미국 진출에 성공해 현지 업체와 오는 2035년까지 주당 1.25달러의 로열티를 받는 계약을 체결해 앞으로 14년간 3억 6000만 원을 벌어들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듯 우수한 국내 육성 품종들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진출하면서 보이지 않는 식량 품종 전쟁 속 ‘로열티를 주는 나라’에서 ‘로열티를 받는 나라’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과수의 경우 국내 육성 품종 보급률이 20%를 밑돌고 포도는 4.5%, 감귤은 2.8%에 불과하다. 국내 육성 품종 보급률이 낮은 품목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로얄티를 지불하고 종자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고스란히 농가의 경영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 원인이 된다.

좋은 품종을 육성하고 보급하는 일은 우리 농업의 생산성, 농산물의 상품성, 그리고 수출 경쟁력까지 끌어올리는 미래 농업 발전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농업인·소비자·연구 단체 모두가 힘을 모아 맞춤형 국내 육성 품종 개발과 보급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케이팝(K-POP)처럼 K-품종들이 종자 독립을 넘어 로열티를 받는 수출 주연으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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