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극단 박근형 연출 “전쟁은 계속 중…결국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
2022년 04월 12일(화) 21:50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박근형 연출
광주 문예회관서 21~23일 공연
한국·이라크 등 배경 4개 에피소드
“광주 배우들 연기 참 좋아 기대”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광주시립극단 제 18회 정기공연 무대에 오르는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한 장면.

“우린 모두 전쟁 중이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죽어야 하는 우린 모두 군인이라고. 아, 난 왜 자신이 없죠. 내가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아, 왜 난 죽는 걸 택해야 하죠. 아 어쩌다 이렇게 된거죠?” “이원재 총버려!” “육군 병장 이원재 실탄 장전 이상 무” “탕! 타탕!”

군복을 입은 배우가 바닥에 쓰러진다. 또 다른 군인 복장을 한 배우들이 쓰러진 군인에게 총을 겨누고 서서히 다가간다. 배우들이 벽면에 설치된 거울을 바라보며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습이지만 실제 무대 크기에 맞춰 연습실 바닥에 그려진 동선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밟아간다. 마스크를 쓰고 연기를 하는 게 어려울 법도 하지만, 배우들의 눈빛과 발성은 실전을 방불케 한다.

광주시립극단이 오는 21일부터 23일(21~22일 오후 7시30분·23일 오후 3시, 7시30분)까지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선보이는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연습 현장 모습이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2016년 남산예술센터 초연 당시 매진을 기록하며 연극계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른 작품이다. 이후 페스티벌 도쿄 2016 공식 초청작, 제53회 동아연극상, 2016 공연베스트7, 올해의 연극3 선정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박근형 연출
지난 11일, 공연을 앞두고 있는 박근형(58)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 작품을 광주에서 꼭 한번 연출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도시들 저마다 아픔을 갖고 있지만, 광주는 특히 5·18이라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는 곳인 만큼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작품은 2022년 대한민국과 1945년 일본 가고시마,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서해 백령도 등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한 네 개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전쟁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무대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젊은 탈영병과 일제 말기 가미가제 특공대가 된 조선인, 이라크에서 미군 식품업체에 배달하다 납치된 민간인, 서해에서 선박 침몰로 목숨을 잃은 해군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박 연출은 한국 연극계에서 손꼽히는 연출가다. 1999년 ‘청춘예찬’으로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등 그 해 연극계 모든 상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에게 이름을 알렸다. 대표작으로는 ‘경숙이, 경숙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만주전선’ 등이 있다. 현재 극단 골목길 예술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광주에서 연출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과거 공연팀을 꾸려 광주 연극 무대에서 3~4차례 정도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광주 연극계와도 친분이 있다고 했다.

“1986년 정도엔가 서울에 올라온 광주 출신 배우들과 ‘귀향’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지금은 사라진 한미 쇼핑에서 공연을 했었다. 당시 동료들 중 한 명이 지금 예술의 거리에서 극장을 운영하는 윤여송씨다.”

광주시립극단과 호흡을 맞추게된 박근형은 광주 배우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공연에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정이형·홍현선·양동진·신은수·노희설·고난영 등 20여명의 배우가 참여한다.

“배우들이 좋다. 특히 중간층 배우들이 참 좋더라. 연기는 물론 연기에 대한 태도가 특히 좋았다. 아울러서 배우들 사이에 ‘앙상블’이 좋아 기대가 많다.”

작품은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어우려져 극적 재미를 주고 음악과 자막 등 다큐멘터리적 요소는 현실과 연극적 환상을 넘나드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번 작품의 무대는 마치 ‘빈공간’과 같다. 서로 다른 4개의 시공간이 무대 위에서 오고가는 만큼, 무대 디자이너인 박상봉씨는 세트를 지우고 공간을 두고자 했다. 누구의 집도. 군대의 어느 곳도, 전쟁터도 아닌 마치 빈공간처럼 무대를 꾸몄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장치, 의상, 소품도 중요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게 박근형의 얘기다.

이번 작품에서는 앞선 공연들과 달리 처음으로 전남북 사투리가 등장한다. 그는 광주에서 공연하게 된 만큼 4가지 에피소드 가운데 현실을 표현하는 ‘탈영병’ 이야기 속에서 전남북 사투리를 사용한다 귀띔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는 것이다.

“냉전 시대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전쟁은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분단이라는 상황, 또 지금의 우크라이나 안에서의 상황도 그렇다. 이렇게 서로 첨예하게 대립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일반 사람이다. 작품의 제목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이지만, 서로 죽이고 죽이지 않으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 사람이다.”

그는 이번 광주공연을 마친 뒤 ‘이장’과 ‘해방의 서울’을 각각 서울과 김천·거창 등에서 연출할 계획이다.

13세 이상 관람. 러닝타임 100분, 관람료는 1만원이다. 예매는 광주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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