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김대현 위민연구원 원장·시사평론가
2022년 04월 11일(월) 00:30
대선이 끝났다. 이번에도 광주·전남은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몰표의 대가는 컸다. ‘또 몰표냐’는 호남 비하가 전국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동안 호남 비하의 원조가 정치적으로 양분화된 영호남의 지역주의였다면, 최근에는 호남의 민주당에 대한 몰표가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진출한 호남인들이 주민등록증에서 본적지 지우기에 나섰던 것처럼 현재는 특정 정당에 대한 호남 몰표로 인해 호남의 젊은 세대들이 호남 비하로 대물림되는 현상을 곳곳에서 발견하곤 한다.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조차 광주·전남 출신들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호남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면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역대 대선에서 보수 정권 최다 득표인 두 자리 수 득표율을 줬다는 점에서 ‘몰표 책임론’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어찌 되었든 대선 이후 광주·전남의 민심은 대선 패배에 대한 충격과 허탈 그리고 걱정까지 겹쳐 주눅이 들고 있다.

여기저기서 광주·전남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을 져야 할 정치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학에도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치 교체가 이루어지고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진다고 나와 있다. 이는 민주주의 작동의 원리와도 같다. 선거를 통해 책임을 지고 흐트러진 민심을 어루만져야 할 정치 권력이 민심은 외면한 채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표만 달라고 호소한다. 참으로 염치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때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필독서라 불릴 만큼 많은 의원들이 책을 읽었다며 SNS에 포스팅을 했던 책이 있었다.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다. 이 책 내용의 핵심은 정치가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신념 윤리가 과거 운동권 출신들의 선과 악으로 구별하는 이분법적 태도에 익숙하다면, 책임 윤리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에 대해 무제한적 책임을 지는 태도다. 베버는 신념 윤리가 근본주의로 흐르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책임 윤리를 등한시해서도 안 된다며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신념 윤리는 강조하면서도 책임 윤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대선 패배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호남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 패배에 따른 지역민들의 울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치인들이 없다. 또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도, 어르신들의 목소리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광주는 거악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우리 안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침묵을 강요한다. 보수 정권과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넘어 비난하고 저주하지만 내부의 비민주적 요소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독재의 탄압에 지역민이 똘똘 뭉쳐 대항하다 보니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화 이후까지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지역의 소수 정치 권력자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독재정권 시절 독재자의 못된 모습을 본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똑같이 행하고 있다는 생각뿐이다. 파시즘에 대항한 세력들이 파시즘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흔히 광주를 말할 때 민주·인권·평화 도시라 말하지만 우리 안의 민주주의와 인권·평화는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지역을 벗어나 외지에서 바라본 광주·전남은 선거 때만 특정 정당에 몰표를 주고 도시는 높은 고층 건물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회색 도시로 답답함을 느낀다. 실제 전국에서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가 광주다. 인구가 많은 부산보다도 높다. 도시는 활기를 잃고 사람은 떠나고 있지만 누구도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실종되고 시도민은 집단 면역에 생기를 잃어 가고 있다.

이제 광주와 전남은 족쇄를 끊고 가벼워져야 한다.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고 민주화의 도시에 걸맞게 비민주적인 요소들과 결별해야 한다. 그래야 호남이 살고 지역민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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