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 심은 뜻은-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2022년 04월 05일(화) 01:30
많은 분들이 음유시인이자 가수인 김도향을 좋아한다. 특히 그가 부른 ‘벽오동 심은 뜻은’이라는 노래를 잘 기억한다. 그의 노래는 경박하지 않고 우울하지도 않으면서 뛰어난 음악성과 함께 폐부를 찔러 오는 풍자가 압권이다. 삶의 철학이나 비판적인 상상력을 은밀하게 자극하고 있다. 이 노래는 원래 그가 ‘투 코리언스’라는 팀으로 활동할 때 발표되었는데, 1970년대 중반의 엄혹한 시절을 거치면서도 용케 살아남았고,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1970년대의 산물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전통 시가에서 기원한 것이다. 많은 시인이나 묵객들이 자주 언급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벽오동 담론이 만들어졌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봉황을 보고 싶은 욕망의 보편성, 즉 누구나 태평성대가 오기를 고대하는 것이었다. 이 노래가 발표되기 전인 1964년 ‘벽오동 심은 뜻은’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최은희·신영균 주연으로 만들어진 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암행어사인 아버지와 의적이었던 아들 간의 운명적 만남을 그리고 있는데, 당대 일급 배우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벽오동 담론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여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지 못한 듯하다.

벽오동은 오동과는 다른 종류의 나무이다. 오동은 빨리 자라고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자녀 혼사를 준비하기 위해 또는 동네 축제를 위해 심었던 나무이다. 벽오동은 이에 비해 실용적 쓸모는 뒤지지만 상징의 세계에서 좀 더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나무이다. 누구나 오기를 고대하는 태평성대의 상징이 용이나 호랑이가 아닌 봉황인 것이 흥미롭다. 용의 상서로움이나 호랑이의 용맹과는 달리 봉황은 그 자체가 음양의 공존과 조화를 나타낸다. 용이나 호랑이는 혼자 있지만, 봉황은 늘 둘이 함께 있다. 봉황의 눈에는 살기가 없고 자비로움이 서려 있다. 부처님의 눈이다. 늘어뜨린 꼬리는 고귀한 품격을 보여준다. 봉황은 흥이 나면 노래를 부르고 날개와 꼬리로 상생의 춤을 춘다.

벽오동 담론이 주는 교훈은 현실이 언제나 그런 꿈이나 기대를 배반한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는 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봉황, 희망이 좌절로 바뀌는 상황에서 벽오동을 심은 주체가 취하는 태도는 자조적 체념이고, 그것의 상징은 허공에 걸린 명월이다. 병와가곡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를 송강 정철은 한시 ‘번곡제하당벽오’(飜曲題霞堂碧梧)로 번역하였고, 조선 후기의 서예가 마성린(馬聖麟)도 이를 한시로 번역했다.

이 시가의 다른 버전, 즉 이세보(李世輔)가 지은 박씨본(朴氏本)에는 봉황은 오지 않고 오작(烏鵲)만 날아드니 이들을 모두 날려 보내라는 표현이 있다. 자조적 체념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행위를 수반하고 있다. 두 가지 버전 모두 벽오동을 심은 주체는 엘리트 사족들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행동양식이 서로 다른 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도향은 한발 더 나아가 차라리 하늘에 있는 뭇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기를 노래했다.

봉황 전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봉지가 있다. 이들이 날아와 목을 축이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연못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봉지 옆에 죽전을 특별히 조성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전설의 새 봉황은 벽오동에 집을 짓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 따라서 봉황을 오게 하려면 벽오동만 심어서는 안되고 인근에 대나무 숲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왜 그것은 누락되었을까?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벽오동을 심듯이 투표를 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한 한국전쟁 유족들이나 인권 침해의 피해 생존자들은 더 간절한 마음으로 벽오동을 심었고 나아가 대나무 숲도 조성했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시가나 김도향의 노래와는 달리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현실이 희망을 배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데 정성을 다해야 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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