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꽃씨를 뿌리며-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2년 04월 04일(월) 03:00 가가
바람이 제법 보드랍다. 땅도 흙내를 풍긴다. 지난가을 받은 꽃씨를 들고 나선다. 땅이 씨앗을 받으려는지 축축하다.
수많은 꽃이 나를 울리거나 웃게 했다. 행복한 날들은 늘 꽃이 함께 왔거나 같이 있었다. 어떤 꽃은 입학하거나 승진할 때 있었고, 어떤 꽃은 연인의 머리에 꽂아 주며 고백할 때 함께했다. 어떤 꽃은 꽃잎째 먹기도 했고, 또 어떤 꽃은 벌과 나비가 모은 꿀로 달콤하게 왔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을 보며 울기도 했고, 가슴에 꽃을 꽂아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어떤 꽃은 신에게 바치며 간절한 소망을 기원했고, 어떤 꽃은 소중한 이가 하직할 때 바치며 평안을 간구하기도 했다.
꽃은 삶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이렇게 늘 중요한 마음의 표식으로 나를 대신했고, 상대의 마음 역시 말 대신 꽃으로 받기도 했다.
꽃은 사시사철 한시도 끊이지 않고 부지런히 피고 졌다. 그런 꽃을 보며, 기뻐하고 감탄하면서도 난 정작 여태 꽃을 심을 줄 몰랐던 것 같다. 그토록 좋아하면서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다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선물을 예쁘게 포장하고도 전해 주지 않는 것과 같다던데, 난 이리 여태껏 어리석게 산 모양이다.
돌이켜보니 꽃을 전혀 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농사를 지었는데, 매년 논밭에 피는 꽃을 보면 내가 그토록 힘들게 봄에 모내기하고 겨울에 보리를 뿌렸던 일들이 꽃을 심는 일이었다. 무와 장다리, 파와 고구마에서도 꽃이 피고, 소나기를 흠뻑 맞아가며 심은 토란과 감자도 꽃이 피었다. 나락과 보리도 무덕무덕 꽃을 피웠다. 근데, 화려하지 않아서인지 시골 아낙을 닮아 수줍게 피어서인지 그 꽃을 유심히 본 적이 드물다. 이미 꽃보다 열매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콩깍지가 낀 내 눈에 꽃이 꽃으로 보였을 리 만무하다.
이제야 어느 구석에 몰래 핀 꽃에 시선을 준다. 귀여운 아이를 보듯 눈으로 여기저기 어루만진다. 해바라기나 장미같이 큰 꽃이나 진달래나 목련처럼 화사하게 핀 꽃이 아니라도 이제는 봄까치꽃 노루귀처럼 작거나 미나리아재비, 꿩의다리와 같이 이름조차 생소한 꽃들에도 몸을 낮춘다.
열매를 바라지 않으니, 비로소 꽃이 보인다. 목적 없이 대했을 때,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꽃도 꽃으로만 보았을 때 더 아름답다.
꽃이 떨어진다. 꽃은 때가 되면 기꺼이 바람에 자신을 던진다. 꽃이 머문 자리에는 새가 떠난 자리에 하얀 알이 있는 양, 작은 열매가 맺혀 있다.
꽃씨 뿌릴 곳을 찾는다. 씨앗을 뿌려 본 이들은 안다. 그럴 만한 장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무턱대고 뿌린다고 자랄 씨앗도 아니란 걸. 꽃씨를 뿌린다. 연애편지를 쓰듯 또박또박 그렇게 꼼꼼히 뿌린다. 새싹으로 답장이 오길 고대하며 쓰는 편지는 인연의 씨앗, 곧 나와 꽃, 꽃과 세상의 각별한 인연의 시작점이다. 인(因)은 씨앗이고 연(烟)은 비와 바람, 흙과 기온 같은 것이라는데, 아름다운 연을 위해 바닥도 곱게 파고, 두엄도 주고 고운 흙으로 이불 덮듯 사부자기 덮는다. 적절한 비와 햇빛이 보살펴 줄 것이다. 우주가 힘을 합치지 않고는 한 송이도 피어나지 않는다니, 내가 심었기보다 비와 바람이 깨우고 햇볕이 키우리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천둥 몇 개, 태풍 몇 개는 견뎌야 필 게다.
우주에 생명을 뿌리는 지금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뛴다. 어떤 빛깔의 꽃이 필까. 어떤 향을 낼까. 꽃씨를 뿌린 날부터는 내일이 기다려진다. 지루할 날들이 없다. 행여 목이 마를까, 너무 더울까, 혹여 천둥에 놀라지 않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뜨고 설렘으로 꽃씨를 뿌린다. 희망을 뿌린다. 내 가슴이 황량하지 않도록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중이다.
수많은 꽃이 나를 울리거나 웃게 했다. 행복한 날들은 늘 꽃이 함께 왔거나 같이 있었다. 어떤 꽃은 입학하거나 승진할 때 있었고, 어떤 꽃은 연인의 머리에 꽂아 주며 고백할 때 함께했다. 어떤 꽃은 꽃잎째 먹기도 했고, 또 어떤 꽃은 벌과 나비가 모은 꿀로 달콤하게 왔다.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을 보며 울기도 했고, 가슴에 꽃을 꽂아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어떤 꽃은 신에게 바치며 간절한 소망을 기원했고, 어떤 꽃은 소중한 이가 하직할 때 바치며 평안을 간구하기도 했다.
이제야 어느 구석에 몰래 핀 꽃에 시선을 준다. 귀여운 아이를 보듯 눈으로 여기저기 어루만진다. 해바라기나 장미같이 큰 꽃이나 진달래나 목련처럼 화사하게 핀 꽃이 아니라도 이제는 봄까치꽃 노루귀처럼 작거나 미나리아재비, 꿩의다리와 같이 이름조차 생소한 꽃들에도 몸을 낮춘다.
열매를 바라지 않으니, 비로소 꽃이 보인다. 목적 없이 대했을 때,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꽃도 꽃으로만 보았을 때 더 아름답다.
꽃이 떨어진다. 꽃은 때가 되면 기꺼이 바람에 자신을 던진다. 꽃이 머문 자리에는 새가 떠난 자리에 하얀 알이 있는 양, 작은 열매가 맺혀 있다.
꽃씨 뿌릴 곳을 찾는다. 씨앗을 뿌려 본 이들은 안다. 그럴 만한 장소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무턱대고 뿌린다고 자랄 씨앗도 아니란 걸. 꽃씨를 뿌린다. 연애편지를 쓰듯 또박또박 그렇게 꼼꼼히 뿌린다. 새싹으로 답장이 오길 고대하며 쓰는 편지는 인연의 씨앗, 곧 나와 꽃, 꽃과 세상의 각별한 인연의 시작점이다. 인(因)은 씨앗이고 연(烟)은 비와 바람, 흙과 기온 같은 것이라는데, 아름다운 연을 위해 바닥도 곱게 파고, 두엄도 주고 고운 흙으로 이불 덮듯 사부자기 덮는다. 적절한 비와 햇빛이 보살펴 줄 것이다. 우주가 힘을 합치지 않고는 한 송이도 피어나지 않는다니, 내가 심었기보다 비와 바람이 깨우고 햇볕이 키우리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천둥 몇 개, 태풍 몇 개는 견뎌야 필 게다.
우주에 생명을 뿌리는 지금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뛴다. 어떤 빛깔의 꽃이 필까. 어떤 향을 낼까. 꽃씨를 뿌린 날부터는 내일이 기다려진다. 지루할 날들이 없다. 행여 목이 마를까, 너무 더울까, 혹여 천둥에 놀라지 않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뜨고 설렘으로 꽃씨를 뿌린다. 희망을 뿌린다. 내 가슴이 황량하지 않도록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