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중구난방으로 고른 클래식 앨범 리스트
2022년 04월 02일(토) 15:00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 할 때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시절 재즈 바를 운영했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고, 그의 소설이나 수필집에는 재즈, 클래식, 록,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등장한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음악을 찾아듣게 되는데, 이 쯤 되니 그가 책에서 언급한 음악으로만 꾸려지는 연주회도 열리고 그의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소개하는 책자들도 여러권 나와 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는 하루키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굴드와 번슈타인이 만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등을 함께 들으며 나눈 대담을 기록한 책으로 약간의 시니컬함이 묻어나 흥미롭게 읽힌다.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60년 가까이 레코드를 모아 온 그가 1만5000장의 LP 중 486장의 클래식 앨범을 소개한 책으로 다루고 있는 음악은 모두 100여곡이다.

저자는 이른바 ‘명반’, ‘희귀반’ 이라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흥미로운 레코드를 적당한 가격(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사와서 듣다 어떤 건 팔고, 어떤 건 간직한다. 그의 말처럼 ‘중구난방’으로 모은 레코드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취향’은 있고, 독자들은 그 취향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다.

그는 이번 책에 대해 어떤 클래식 가이드북이 되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희귀 음반을 자랑하려는 마음도 없이 ‘결과적으로 모여버린’ 레코드를 소개할 뿐이라고 말한다.

‘LP판은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그만큼 반응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그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 녹음 본을 중심으로 음반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 담긴 100여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 등 익숙한 곡이 눈에 띈다. 더불어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중 ‘핀란디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포욜라의 딸’이나 프로코피에프의 곡들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앨범 디자인이다. 클래식 앨범을 고를 때 재킷 디자인에 집착하는 편이라는 그의 말처럼, 연주자나 지휘자의 얼굴, 명화, 풍경 등 다양한 주제로 제작된 앨범 자켓은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그가 자켓이 마음에 들어 자꾸 사 버리고 만다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 앨범을 비롯해 꼭 실물로 한번 보고 싶은 앨범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책의 판형이 좀 더 컸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어차피 인생이란 거의 의미 없는 편향의 집착에 지나지 않다’고 말하는 그가 고른 ‘중구난방의 앨범 리스트’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문학동네·2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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