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안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 - 김학수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2022년 03월 29일(화) 23:30 가가
지난 주말 ‘집콕’하면서 ‘서바이벌 패밀리’라는 영화를 시청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 가족이 갑자기 끊어진 전기로 일상생활이 단절된 도시로부터 식량과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족들의 이야기로 전체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일단은 전기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필자는 이 영화에서 식량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기가 끊어져 모든 것이 멈춰 선 도시에서 당장 먹을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거기에선 최고급 외제차도, 값비싼 명품 시계도 아무 소용없다. 식량은 바로 인간의 기본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먹고 마시는 ‘식’(食)의 문제라 더욱 그렇다.
만약 영화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식량 안보도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량 안보란 국가가 인구 증가, 천재지변 등의 각종 재난,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도 항상 국민들이 일정 수준의 식량을 소비할 수 있도록 적정량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과잉 생산으로 쌀이 남아도는데 무슨 식량 안보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사실 우리나라는 밀, 콩, 옥수수 등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OECD국가 중 곡물 자급률이 최하위 수준이라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쌀 자급률은 97.3%로 높은 수준이지만 그 외 주요 곡물의 경우 밀 1.2%, 옥수수 3.3%, 콩 25.4%, 보리쌀 32.6%에 불과하다. 실제로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 안보 지수는 세계 29위로 경제 규모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이제는 언제라도 수입을 통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안이한 인식은 금물인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마스크 수급 대란이나 요소수 품절 사태 등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봉쇄와 물류 중단, 방역 강화 등 글로벌 식량 공급 체계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즉 ‘총성 없는 식량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식량 민족주의’ 기조가 일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부터라도 식량 안보를 위해 농업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국가 경제에 있어 농업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농업과 농촌은 식량을 공급하는 기본적인 기능 외 환경 보전, 농촌 경관 제공, 전통문화 유지 계승 등 국가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지금 맞닥뜨린 세계적 위기 속에서 우리 농업과 식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식량을 구할 수 없는 비상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 모두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