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를 정원으로…싱가포르의 아름다운 도전
2022년 03월 29일(화) 20:00
<12> ‘정원도시’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싱가포르
융·복합 정원도시 지향··정원은 인공화된 도시 문제 해결하는 수단
건물벽·옥상·베란다 활용, 고정 관념 깨고 고층 건물에도 정원 조성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베이’ 녹지 도시비전 보여준 상징적 정원

싱가포르는 정원도시에 걸맞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 디자인으로 녹화 공간과 수영장 등을 확보, 아름다움과 쾌적성을 제공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만약 미래도시에 대한 꿈이나 비전이 없다면 우리도시는 누더기 옷처럼 개념 없는 풍경만을 반복해 양산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상당부분 싱가포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물론 바람직한 미래도시에 대한 대답은 수학공식처럼 명료하게 한 두 마디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선도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융·복합정원도시를 향한 아름다운 도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 태 갑 광주전남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산림청 자문위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평가자문단위원 ‘풍경의 발견’ ‘정원을 거닐며 삶을 배우며’ 등 저자
융·복합이라는 토픽은 우리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회자되고 있다. 특히 기존도시를 정원개념으로 재생하거나, 자칫 경직될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에 정원을 도입하여 친근감을 더해주는 시도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더 주목할 만한 일들도 목격할 수 있다. 건물벽면 녹화나 옥상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베란다를 확장하여 정원을 끌어들이거나 아예 고층건물의 특정 층을 통째로 비워 정원으로 조성하기도 한다.

이는 녹지공간의 증가와 더불어 도시경관이 아름다워지는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건물과 녹지공간이 별개라는 기존의 인식을 바꿔놓은 획기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재생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원은 도시재생문제를 풀어가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상업용 건물에 도입된 녹화공간이 시가지에서의 녹시율(綠視率)을 높여주고 있다,
오랫동안 농경문화의 토대 위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관상(觀賞) 위주의 ‘정원(Garden)’보다는 실용적인 ‘마당(Open Space)’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수확한 농작물을 들여와 탈곡이나 타작을 하고 건조시키는 농작업의 연장선상에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전통혼례식이나 장례식을 비롯한 온갖 잔치가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도 마당은 숨바꼭질, 팽이 돌리기 등을 할 수 있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영화 ‘오징어게임’에서 우리 놀이문화가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문화적 창조공간인 마당이나 골목길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마당은 우리 생활문화에 걸맞은 우리 스타일의 융·복합정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는 우리의 마당이나 골목길 문화를 무력화시켜버렸고 공동체문화마저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어쩌면 우리 마당문화도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함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상업용 건물에 도입된 녹화공간이 시가지에서의 녹시율(綠視率)을 높여주고 있다,
사실 우리는 융·복합문화에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비빔밥이 그중 하나이다. 각자 가진 재료 본연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또 다른 독특한 맛을 이끌어낸다. 또 육군, 해군, 공군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새로운 역할을 하는 공수부대나 해병대를 탄생시킨 발상도 그렇다. 우리의 식탁에서 매일 마주하는 김치야말로 최고의 융·복합문화의 산물이다. 밭에서 재배하는 무나 배추, 고추, 마늘, 생강 등을 비롯해 염전에서 가져온 천일염을 사용하고 바다에서 잡은 멸치나 새우 등으로 만든 젓갈이 첨가된다. 오랜 시간동안 재배하고 수확하고 염장하고 건조시켜 빻아 혼합하는 엄청난 과정을 거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김치다.

이처럼 우리는 융·복합시대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제 우리 마당문화의 저력으로 정원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마당이 아름다운 꽃들로 넘쳐나고, 마을 담벼락엔 페인팅 벽화 대신 담쟁이덩굴과 능소화가 기어오르며 골목길 담장 아래에 봉선화, 채송화가 소담스럽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곳에서 이웃들이 마주보며 웃음꽃을 만발한다면 더 바랄나위 없을 것 같다. 전시 위주의 미술관, 박물관에도,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는 서원, 향교, 고택, 그리고 하천이나 호소 등 수변공간에도 정원이 도입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래서 사람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다시 찾고 싶은 명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온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농수산업, 관광산업 등은 물론이고 생존기반 마저 무너뜨릴 정도로 고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 요컨대 기후변화가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원과 녹지는 자연재해를 저감시키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건강과 휴식 등을 위해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녹색자원(Green Capital)이다. 그 녹색자원이 양적으로 충분히 확보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쾌적한 경관을 제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할 것이다. 녹색자원은 장수사회로 가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사회복지 요소의 최고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2040)에 그린 인프라(Green Infra)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회간접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 조성에 집중해 왔었다면, 이제부터는 녹색자원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적극 확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환경문제, 삶의 질 문제에 보다 더 관심을 갖겠다는 취지로 느껴진다.

따라서 이미 조성되었거나 새롭게 계획하는 녹지공간이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즐길 거리가 풍부한 정원개념으로 완성된다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완성도 높은 정원도시는 지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지역자원으로서 힘을 발휘하여 관광객을 불러들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정원은 보통 도시공원이나 녹지보다는 섬세한 디자인과 유지관리가 수반되어야 하므로 많은 전문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도시 전체를 정원도시로 가꾸어가고 있는 싱가포르 도시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싱가포르에서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잘 정돈된 녹지공간을 만날 수 있다. 가로수, 공원은 물론이고 건축물 벽면녹화, 옥상녹화, 베란다녹화 등에 이르기까지 마치 도시 전체를 씨줄날줄로 엮어 놓은 듯 어느 곳에서나 어렵지 않게 녹색경관을 접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싱가포르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수종을 엄선해 계획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 비전수립을 통해 도시전체를 녹색자원으로 연결하는 정원도시(Garden City) 청사진을 마련해 계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마침내 2012년 6월, 마리나 베이 남쪽 간척지에 세계가 주목할 만한 파격적인 규모와 상징성을 지닌 정원을 완성함에 따라 그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기존 싱가포르의 명소였던 나이트 사파리, 주롱 새공원, 보타닉 가든 등에 이어 ‘정원 속의 도시(City in a Garden)’라는 싱가포르의 도시비전을 현실화하는데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정원이 바로 가든스 바이 더베이(Gardens by the Bay)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원 프로젝트는 싱가포르 국립공원운영위원회가 주관, 2006년 1월 국제현상공모를 개최했는데 24개국에서 70여 개 팀이 참가했다. 총11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하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영국 그랜트 어소시에이트의 설계작품을 선정했다.

베이 사우스는 상업도시에서 관광도시로의 이행이라는 내용을 담아 싱가포르의 미래를 제시한 바 있다. 현재 싱가포르 관광은 마리너 베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곳은 베이 사우스, 베이 이스트, 베이 센트럴 등 세 구역으로 구분하여 차근차근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도시의 모습은 어떤가? 녹지는 갈수록 감소되고 그 자리에 성냥갑 같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우후죽순 들어서며 삭막한 빌딩숲을 이루어가고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선조들로부터 전해져 온 철학이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다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보다는 경제적 유익이라는 유혹을 극복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인공지능(AI), 스마트 도시에 대한 비전은 여기저기서 예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도시, 사람이 살만한 도시, 이 물음에 대해서는 시원스런 정책이나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상당 부분 싱가포르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선도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융?복합 정원도시를 향한 아름다운 도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원은 과도하게 인공화한 도시문제를 풀어가는 주요수단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현 시점에서 도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자연과 예술과 과학의 융합, 이것이 우리 도시에서 실현될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정원도시의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도시로 가꾸어갈 것인지는 순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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