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도시와 창조도시, 문화도시-류재한 전남대 불문과 교수, 한국프랑스학회 회장
2022년 03월 23일(수) 23:10
도시는 ‘인문(人紋)과 인문(人文)의 반영체(反影體)’라고 말한다. 도시의 정체성(역사와 이야기)을 이루는 토대가 도시에 각인된 인문(人紋)과 인문(人文)이기 때문이다. 인문(人紋)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자신의 저서 ‘파리, 19세기의 수도’에서 말했던 “거주한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것을 의미한다”에서 ‘흔적’ 즉 인간 삶의 흔적(무늬)을 말하며, 인문(人文)은 인문(人紋)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인간의 변화와 그 기록’을 가리킨다.

과거 인간은 적대적인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주술적 의미의 인문(人紋)을 자신의 신체(문신)와 거주지(동굴벽화)에 새겼다. 이후 인간은 도시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고 기록하게 된다. 도시가 이제 인간의 ‘몸’이자 ‘동굴’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인간은 도시라는 새로운 ‘몸’과 ‘주거 공간’에 자신의 흔적 즉 인문(人紋)을 새기고 기록(人文)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도시는 인간의 몸과 주거 공간의 확장된 형태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송의 작품 ‘두개골의 도시’(Ville cranienne)는 두개골이 뇌조직 및 감각기관의 조절과 조정의 유기체로 기능하듯이 도시 역시 기억(특히 人紋)의 조절과 조정의 유기체이어야 함을 말해 준다.

인간의 기억을 담당하는 ‘뇌’와 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을 보호하는 곳인 두개골(Cranium)의 변형은 대뇌피질의 압박이나 뇌실질의 변형을 초래하여 결국 뇌기능 저하 혹은 마비를 유발한다. 앙드레 마송의 ‘두개골의 도시’는 도시 역시 인간의 기억(人紋)을 보호함과 동시에, 보호해야 할 새로운 기억을 새기고 기록하는 공간이자 장소임을 말해 준다. 두개골의 변형이 인간의 뇌 기능 저하와 마비를 초래하는 것처럼 ‘도시’의 변형(초고층 아파트 중심 도시) 역시 도시의 기능 저하와 마비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 ‘도시의 파노라마’(Panoramas de la Ville)는 흩어져 있는 도시 기억의 퍼즐(人紋)들이 스스로 질서와 균형을 갖추며(입체감을 얻으며) 자리 잡아 가는 것을 보여 준다. 도시 속 인간의 흔적과 기억들이 스스로 질서와 균형을 갖추며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도시의 구성 원리임을 말해 준다. ‘도시의 파노라마’는 회화에서 구상적·재현적인 요소를 일체 포기하고 대상(즉 도시)의 근원에 있는 질서와 균형을 구성 원리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도시 역시 구상적·재현적 요소 즉 도시의 외관과 기능보다는 도시의 근원에 있는 질서와 균형을 구성 원리로 삼아야 함을 말해 주는 듯하다.

요즈음 대한민국의 많은 도시들이 인문(人文)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문도시라 함은 “시민들이 예술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인문 교양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춘 학습도시”를 지칭하며 더 나아가서는 “시민들이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시민예술도시”를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인문도시는 학습도시와 시민예술도시 외에도 이들의 토대가 되는 ‘창조도시’의 방향성을 지닐 때이다. 여기서 창조도시는 ‘도시가 보유한 역사와 문화(人紋)를 장소(텍스트 즉 人文) 가치로 온전히 체현하여 이를 새로운 도시의 활력으로 삼는’ 도시를 말한다. 이와 같은 창조도시가 바로 문화도시이다.

우리 광주는 보유한 역사와 문화를 장소의 인문 가치로 온전히 체현하여 새로운 도시의 활력으로 삼는 창조도시이자 문화도시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은 광주에 새겨진 인문(人紋)을 읽고 해독하여 이를 인문(人文)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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