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관매직
2022년 03월 17일(목) 02:00 가가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의 대작 ‘신곡’은 중세 최고의 철학 서사시다. 신곡에는 지옥부터 연옥, 천국에 이르는 단테의 여행을 담았는데, 그중에서도 지옥의 묘사가 압권이었다. 지옥은 총 9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1층을 제외하고 각각 이름이 있다. 색욕, 폭식, 탐욕, 분노, 폭력, 사기, 이단, 배신 등인데, 이 가운데 사기 지옥은 모두 10겹으로 구성돼 있다.
10겹 가운데 5겹에 부패 정치인이 갇혔는데, 그들의 죄목은 횡령, 뇌물수수, 매관매직이었다. 이들은 뜨겁고 끈적끈적한 역청(석유 정제 시 나오는 흑갈색 탄화수소 화합물)에서 괴로워하는 벌을 받는데, 나오려 하면 악마들이 손이며 발을 갈고리로 찢어 버렸다.
여러 가지 죄 가운데 매관매직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세에도 돈을 받고 관직을 건네는 행위가 비일비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관직 가치의 60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년 납부할 경우 세습을 인정하는 제도를 운영했고, 영국에서는 엄청난 전리품 때문에 육군에 들어가려면 오늘날 시세로 몇백만 원의 돈을 바쳐야 했다. 대위 계급장은 약 4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공명첩(空名帖)이라고 해서 국가가 부유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받고 형식상의 관직을 내렸다. 이 이름 없는 임명장이 곳곳에서 판을 치는 것에 더해 권력을 잡은 세도가들 역시 음성적인 매관매직을 남발했다. 능력은 고사하고 자기가 바친 금액에 플러스 알파까지 챙기려 들었던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는 조선 쇠락의 결정타였다.
이러한 매관매직이 전남 일부 시군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사무관·서기관 승진에 각각 몇천만 원이 든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들릴 정도다. 거래가 현금으로 은밀하게 이뤄져 수사기관의 추적은 피했지만, 입소문까지 차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능력 없는 인사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거나 아예 승진을 포기한 채 대충 업무를 보는 풍토가 만연하면 행정의 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승진 인사에서 돈을 받은 현직 단체장부터 퇴출시켜야 한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여러 가지 죄 가운데 매관매직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세에도 돈을 받고 관직을 건네는 행위가 비일비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관직 가치의 60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년 납부할 경우 세습을 인정하는 제도를 운영했고, 영국에서는 엄청난 전리품 때문에 육군에 들어가려면 오늘날 시세로 몇백만 원의 돈을 바쳐야 했다. 대위 계급장은 약 4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