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과 민주당, 그리고 ‘동학 개미’ - 서금석 조선대학교 전 강사
2022년 03월 16일(수) 23:10
1894년 갑오(甲午)년 벽두, 전북 고부(지금의 정읍)에서 백성들이 봉기했다. 흔히 ‘고부 민란’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그해 내내 동학운동으로 번졌다. 역사는 이 사건을 동학농민혁명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조선은 근대화의 명분이 된 ‘신분제 철폐’라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끌어 냈다. 따라서 동학혁명은 실패한 사건이 아니다. 동학군의 지도자는 백성과 함께했고, 백성들은 각자가 지도자였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을 일컬어서 ‘동학 개미’라고 한다. 필자는 그 성격에 맞춘다면 오히려 촛불 시민들을 동학 개미라고 해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간발의 차이로 희비가 갈렸다. 패자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렇지만 패배는 오로지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함께 뛰었던 모든 이들 각자가 동학 개미였기 때문이다. 패배로 인한 상실감과 박탈감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는 정치인들의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무거운 책임은 정치인들이 가장 크게 짊어져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두어 달 뒤에는 지자체 선거가 치러지고, 2년 후에는 총선으로 이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치인들이 동학 개미들과 함께했나 싶을 정도로 의구심이 든다. 선거 전과 그 후에 그들이 보여줬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2년 전에 총선에서 180석을 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치에 대한 대답은 터무니없었다. 대선 패배를 반드시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하나의 빌미였을 뿐이다.

민주당은 오만했고 자만했다. 재작년 총선 승리 후 당 대표가 “민주당 정권이 20년 집권해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고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40%를 웃돌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패배했다. 왜 그랬을까? 너무도 단순한 ‘정권 교체’ 구호에 대해, 거대 여당은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대안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령 그 대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이를 가지고 제대로 국민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불과 1년 전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수도권 민심이 이를 보여주었다.

기득권이 무섭고 놀랍다. 대선 정국 내내 민주당도 기득권 세력이라는 ‘뇌피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더 보수적이다 싶을 정도였다. 표의 전쟁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방어막을 단단히 쳤다. 복당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인색했는지를 돌아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찍부터 개방 전략을 선택한 상대 당이 사람들을 끌어모은 것과 사뭇 달랐다. ‘정권교체 깃발 아래 모두 모이자’가 먹힌 것이다. 뒤늦게 복당 기간을 주고 신청을 받는 여당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막바지에 나온 ‘통합 정부’이나 ‘정치 교체’ 운운도 때를 한참 놓쳤다.

정권의 유튜브TV 구독자는 30만 명이 고작이다. 조회 건수는 말할 나위도 없다. 유명 개인 유튜브에 비해서도 구독자가 턱없이 적다. 자기 자랑도 못하는 판에 어떻게 국민을 설득시켜 국정을 운영했을까 의아스럽다. 언론만 탓했지, 어떻게 국정을 홍보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대안은 2년 전 180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복기하면 될 것이다.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발로 뛰었다. 시민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누가 180석을 만들어줬는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전국적으로 광장에 천막 당사라도 쳐야 한다. 따뜻하게 보낼 일이 아니다. 국민 제안제와 같은 기회를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호남권의 높은 참여율과 지지율을 지역 정치인들의 자랑이나 노고로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특히 수도권 시민들에게 왜 등을 돌렸는지를 찾아다니며 물어야 한다. 자신들의 시선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 시민들의 눈높이를 새겨야 한다. 동학 개미는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한 방편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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