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와 식량 주권-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2022년 03월 15일(화) 23:00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식량 위기’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생산하는 밀은 세계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실제 전쟁이 개시된 이후 세계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는 5월물 연질 적동소맥(고품질 밀) 가격이 6거래일 동안 매일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고 이런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밀 파종 시기가 다가오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농부들도 총을 들거나 해외로 피란을 떠나 농사를 지을 인력이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군이 흑해 항구도시를 점령해 통상 흑해를 통해 들여오는 농사 장비와 비료 등을 가지러 갈 수도 없다. 식량 부족이 현실화하자 각국은 빗장을 걸고, 자국 식량 단속에 나섰다. 이집트는 밀과 밀가루, 콩 등의 수출을 금지했다.

비단 이번 전쟁뿐 아니라 세계적 이상 기후에 따른 자연재해가 늘고 코로나19 팬데믹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식량 주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곡물·식량 자급률은 저조한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식량 자급률은 45.8%로 국민이 먹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1%에 불과하고 심지어 20년 전 29.7%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처럼 곡물 수입이 많은 나라는 식량 주권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간한 식품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올 한 해 세계 식품 수입액은 1조 7500만 달러(약 1189조 9893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는데 이는 지난해 대비 14%나 상승한 역대 최고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식량 안보의 위험성이 커지면 일부 국가는 식량을 무기화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는 이런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과거 6·25 전쟁이나 보릿고개 등에서 겪었듯 식량 부족은 우리의 생명과 바로 직결되기에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언제나처럼 돈만 주면 쉽게 사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부는 곡물·식량 자급률 제고를 위해 2030년까지 밀·콩 자급률 확대 계획을 발표했지만 식량 주권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식량 자급률 제고는 단순히 농업계와 정부만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전 국민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의 생존과 국가 존립을 위해서 식량 주권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식량·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보다 강도 높은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농업·농촌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농업 예산 및 보조금 확대 등을 통해 우리의 식량 주권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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