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오지현 조선대 자연과학·공공보건안전대학 상담심리학과 교수
2022년 03월 08일(화) 23:00
2014년 3월 임용 후 직업에 변화가 생겼다. 약 10년 동안 병원에서 놀이 치료사로 일하고 연구를 하다가 대학에 오면서 놀이 치료를 가르치는 교육자의 역할로 바뀌었다. 그동안 공부와 수련을 통해 내가 직접 치료를 하고 연구하는 행위는 너무나 익숙하였지만, 치료와 연구를 ‘가르치는’ 행위는 낯설고 배워 본 적이 없었다. 시간 강사나 특강 강사로 강의하던 방식으로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연계된 전공 교육과정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웠다. 이후 2학기부터 교수학습 개발팀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교수법 워크숍에 참여하며 ‘아, 이래서 모르는 건 배워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다 보면 늘겠지’ 했지만, 잘 가르치는 법도 배워야 했다.

한 학기 내내 교수법 연구 모임과 수업 촬영 컨설팅, 사례 공유 워크숍까지 꽉 찬 일정이었다.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일이 커졌다. 프리클래스 동영상 제작을 위한 준비와 촬영, IT와 친하지 않아서 생기는 난제들, 그리고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문제 개발 등으로 한 학기를 바쁘게 보내야만 했다. 이때부터 나는 ‘열정 만수르’가 되어 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악플(?)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학생들의 수업 평가는 “차라리 주입식 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였다. 주말을 반납하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질문과 토론으로 진행되는 수업 시간에 학생 참여가 예상보다 저조했는데 스스로 분석한 결과 이는 교수의 수업 운영에 대한 미숙함이 원인이었다.

교수는 질문과 토론에 낯선 학생들이 수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학생들이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또다시 도전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힘들었지만 전달식 강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변화가 크게 나타났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말이 많아졌으며, 쉬는 시간에도 질문을 하였다.

이러한 변화로 나는 점점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났다. “진도를 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교수가 자신의 지식으로 공간을 점령하는 교육이 아닌 공간을 열어 두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용기”(파커 파머)가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를 교화(敎化)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반면에 또 인간은 교화에 대한 반사 본능도 있다.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건 중요하나 변화에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강의 평가에 힘들어하던 그때, 만화 ‘송곳’에 나온 대사가 생각났다. 반성했다. 군대의 문화를 바꿔 보고자 했던 주인공에게 “어설픈 변화보다는 예전처럼 상사에게 맞는 게 편하다”고 말했던 부하의 심경(心境)이 떠올랐고, 이를 통해 반성했다.

그렇다. 어설픈 교화는 위험하다. 변화란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과 믿음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 반사가 줄고 자발적 동기가 생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긴 호흡으로, 멈춤 없이 매 학기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기 주도 학습의 필요성을 안내했다.

내가 지금까지 학생 참여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수가 가르치지 않을 때, 그제서야 학생들이 ‘배운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교육자는 ‘가르치지 않을 용기’를 내야 한다. 가르치려고 하는 유혹을 견뎌 내면서 학생들의 성장을 통해 나 또한 교사-연구자(teacher as researcher)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