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보호구역을 돌아보고-이영석 전 광주대 건축학부 교수, 광주시 시민권익위원회 위원
2022년 03월 01일(화) 23:00
최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중요한 변화들이 보이고 있다. ‘안전한 국가’가 나라의 목표가 됐으며,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포괄한 일명 ‘민식이법’ 제정(2020년 3월 25일 시행) 및 중대재해특별법(2022년 1월 25일 시행) 제정이 그것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무사고를 자랑하는 나라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사고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라여야 한다. 호주에서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나자 일주일이 넘도록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제도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며 그 정착에는 협력과 타협의 과정이 필연적이다. 그런데 어린이 보호구역을 둘러싼 주민들의 요구가 있어 현장을 둘러보고, 안타까운 사고의 원인이 어린이와 운전자의 불행뿐만이 아니라 후진국형 도시 계획과 건축 문화 및 행태에서 비롯된 것을 알게 되었다.

선거 때만 되면 유행가 가사의 한 대목인 양 흘러나오는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을 비롯해 현장 상황에 무관심한 탁상행정, 건축주의 요구를 극복하지 못하는 건축가의 설득력, 공원과 주차장 등 공공공간의 가치를 무시하는 정치인과 민간투자자, 내 집에는 투자 없이 공공에만 바라는 ‘죄수의 번민’에 중독된 주민 의식, 자전거를 이용한 쇼핑과 통학이 ‘금지된 장난’이 되어버린 무사안일한 교육 및 교통 행정이 학교를 아이들의 천국으로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모든 것들을 도시 재생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으로 듣고 싶어진다.

어린이 보호구역 주변의 거주자와 상인은 주정차가 금지된 학교 주변에서 생활과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상가는 매출이 급감하고 주택과 사무실은 공실이 발생하는데, 입법 및 관련 행정기관 등과의 협의가 장벽에 부딪혔다는 내용이다. 그들의 요구는 일부 구간 주정차 금지구역 완화, 단속 시간 및 공휴일 단속 유예, 공공주차장 확보 등이다. 학교를 사방으로 둘러싼 노후 주거지엔 지금까지 집 앞 도로가 주차장이었고, 신규 건립된 중규모 복합 상가도 화물차량용 상하차 공간이 없어 도로 한 차선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건축문화는 주차장에 인색했고 그 결과 온 마을이 주차장이 된 셈이다. 스쿨존은 차량의 속도와 주차장의 문제이다. 스쿨존의 융통성 있는 운영과 지상 주차 공간의 확보가 시급하다. 과밀 도시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을 정착시키려면 도시 재생이 가장 필요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스쿨존을 교통문화로 보면, 주민들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결과적으로 학교 주변 도로를 학교와 교육청에 전부 기부한 셈이다. 받은 혜택을 주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안을 상호 협의해야 한다. 스쿨존은 학교 주변의 전 구역이 될 필요도 없다. 좁은 주택가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하고, 주간엔 학생들의 보행로로, 야간엔 주차 공간으로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의 주통학로에 별도 유도색으로 구분 포장을 하여 사전에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독일은 감시 카메라와 함께 신호등 및 과속방지턱의 이중 설치로 사전 예방 효과를 높이고 있다. 우리의 도시에서 주민과 학교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교통문화 선진화의 상징이며 안전한 민주국가로 가는 교육장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소통해야 할 과제가 많아 보인다. 주민들의 안전 봉사, 학교의 열린 마음, 도시와 교통 행정의 협력과 지원, 도로 이용자의 안전 의식이 키워낸 열매이다. 한 차선을 막아선 불법 차량은 골목길 소화전 앞에 세워둔 차량과 같다. 학교 주변부터 차고 증명제 수준의 도시계획 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 모두가 안전한 국가, 다 함께 잘사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한 어린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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