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2040] ‘몽당연필 교육’ 시대를 넘어-오태화 위민연구원 이사·대학생
2022년 02월 28일(월) 05:00
우리는 민족이 겪어온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찬란한 때를 통과하고 있다. 삶의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장을 고민하는 시대. 부의 재분배라는 시대적 과제는 남아있지만, 부의 총량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시대.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기술 연결이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시대. 그러나 이렇게 찬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허하다. 필자는 이 공허함의 근원을 교육 현장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길을 걸어가는 청소년들과 학생들을 보면 ‘몽당연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쓸 만큼 다 써서 닳아져 버린 몽당연필이 이들의 처진 어깨 뒤로 보인다. 삶의 모든 즐거움을 상실해 버린 듯한 휘적거리는 걸음이 마치 스스로의 일인 양 마음이 아리다. 과도한 무한 경쟁 체계가 낳은 자조적 패배주의가 걸어가며 주고받는 농담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한다.

우리 사회의 청소년과 학생들은 교육 현장 속에서 ‘나’보다 ‘남’을 먼저 배운다. ‘나’를 채 알기도 전에 좋은 학교에 진학하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한 ‘남’의 삶을 먼저 배운다. 또한, 세상에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입시에서, 취업 경쟁에서 한 번 이상의 패배를 경험하거나 패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이 세대를 관통하는 자조적 패배주의의 뿌리가 된다.

교실은 평준화의 이름으로 잠들었고, 질문은 효율성의 이름으로 상실되었다. 수시의 확대는 교육 귀족의 국가 귀족화를 촉발시켰고, 이어진 정시의 확대는 변별력의 심각한 추락을 야기했다. 그 속에서 터져 나온 교육 문제의 대부분은 당사자인 개인의 악마화 외에는 아무런 체계 개선을 잉태하지 못한 채 꺼져갔다.

그렇다면 이 체계의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이러한 비극의 시작이 ‘대안 없는 악마화와 교육의 고립화’에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것은 교육계 스스로가 만들어갔던 것은 아닐지라도 교육 외 부처의 교육 문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야기했다. 시험지 유출 의혹이 터져나왔을 때도, 표창장 위조 의혹, 학력 위조 의혹 등 교육적 문제를 야기한 사건이 표출되었을 때도 우리 사회는 줄곧 한 개인의 악마화에만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은 전문적 정책 분야의 하나로 남아 여전히 고고하게 고립되어 갔다.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에 급급했던 정치권의 태도도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였다. 만일 위에 언급했던 모든 문제가 실제로 존재했던들 그것이 비단 그들 개인만의 문제였겠는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부정 이익에 대한 전면적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 제시는 왜 여론의 중심으로 다가가지 못했는가? 정치권은 자신들 세력의 이익 확보에 급급했고, 여론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모조리 당사자인 개인들에게 퍼부어대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가장 먼저 교육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국한시켜서는 안된다. 일반 시민의 눈으로 우리의 자녀가 받아야 하는 교육의 질을 주장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선량한 일반 시민’을 길러 내는 교육의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교육의 지나친 정치화도 경계해야 한다. 교육이 정치권의 세력 다툼의 장이 되는 순간 대안 제시는 사라지고 개인의 비극적 악마화만이 되풀이될 뿐이다. ‘성공의 절대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사고를 함께 가르쳐야만 한다. 취업과 입시 위주로 개인의 성공을 재단하고, 이것을 수치화하고 순위화하는 교육의 결과 주의도 줄여 나가야 한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바뀐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자조적 패배주의의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거리마다 넘쳐 나는 ‘몽당연필 교육’의 시대를 이제는 뛰어넘어야 한다. 그 대신 학생들과 청소년들이 저마다의 성공을 거머쥐는 ‘모두의 승리 시대’를 열어 가자. 혐오와 조롱과 악마화의 무기를 던져 버리고, 신뢰와 화해와 대안 제시의 새로운 교육 시대를 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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