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는 이유-김향남 수필가·조선대학교 외래교수
2022년 02월 28일(월) 03:00
학교 운동장의 축제 마당. 날은 맑고 하늘엔 만국기가 펄럭인다. 운동장 가운데 마련된 축제 무대는 커다란 달팽이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웃고 있는 달팽이는 색채도 표정도 날아갈 듯 가볍다. 쿵쿵,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에 덩달아 신이 난 것 같다. 여학생 한 명이 무대 위로 오른다.

무대 위의 여학생은 고개를 숙이고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가 싶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머리를 젖히고 어깨를 들썩이며 팔다리를 까불대고, 그리고 온몸을 요동한다. 무대 아래서도 뜨거운 함성이 터진다. 춤은 더욱 격렬해진다. 하, 저 작은 몸 어디에서 저토록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쏟아지는 음악에 어깨가 들썩인다. 쿵쾅쿵쾅 심장이 울린다. 햇살도 푸르게 출렁인다. 난데없이 목이 멘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춤추는 저 애의 몸짓은 더없이 발랄한데 나는 왜 목이 메어 오는 것일까. 눈에는 눈물까지 차오른다.

빠르게 비슷한 기억이 스친다. 시내 백화점에 갔을 때였다. 음악 소리가 요란했다. 소리의 출처는 정문 쪽에 마련된 특설 무대. ‘○○사단 신인 발굴 오디션’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관객도 겹겹을 이루었다. 무대 위로 호명된 아이들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인 듯했다. 그들은 자신의 춤과 노래, ‘끼’와 재량을 한껏 뽐내는 중이었다.

나는 한참을 구경하며 서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춤을 마주한 순간 뭔가 뭉클해지는 것이 있었다. 뭘까? 이 돌연한 느낌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도 같고 뭉근하게 아픈 것 같기도 한, 흐뭇하기도 하고 기꺼운 것도 같은 이 야릇한 것은 대체 뭐지?

다시 축제 마당. 무대는 숫제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인다. 운동장이 들썩이고 교실이 덩실거린다. 달팽이는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춤꾼도 관객도, 무대 위도 무대 아래도 흥건하게 취해 있다. 모두가 신나는 댄스파티 한마당.

이윽고, 격렬한 춤사위도 멈추고 음악도 잦아들었다. 무대 위엔 다음 팀이 올라와 있고, 나는 예의 감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틈에 바로 전 그 아이가 내 옆을 지나간다. 머리칼이 젖어 있다. 훅, 땀 냄새가 끼쳐 온다. 나는 문득 그에게 묻고 싶다. 그토록 격렬하게 너를 흔드는 것이 무엇이냐.

그런 적이 또 있었다. 전위무용가 H의 글을 읽을 때였다. 나는 만삭이었고 두 번째 아이였다. 피로와 우울, 알 수 없는 허기로 나를 방기하고 있을 때, 그때 그녀를 읽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제 존재에 열중했다. 스물일곱에 영문학도에서 무용학도로 변신, 서른셋에 세계 전위 무용의 본산인 뉴욕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노래 부르고자 하는가? 그러나 그대 자신이 노래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삶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그대를 통해서 노래로 흘러나오게 하라. 춤추고자 하는가? 그러나 그대 자신이 춤춰서는 결코 안 된다. 삶의, 이 야생의 에너지가 그대를 통해서 춤으로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녀는 솟구치는 생의 의지를 따라 마음껏 춤을 추었다. 그러나 무용가로서 성공의 절정에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인도로 떠났다. 수행자의 길이라는 또 다른 삶이었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 끝없는 갈구와 몰입과 열정…. 나는 그녀가 쏟아 놓은 것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래, 놓치지 않아야지, 나를 놓지 않을 거야. 그녀의 말들이 내게로 건너온 듯 새로운 열망에 몸을 떨곤 하였다.

지금 여기 이 운동장, 나는 저 역동하는 리듬에 ‘나’를 맡기고 있다. 간질간질, 온몸을 흔들고 싶은 욕망으로 속에서는 연신 뜨거운 것이 일어난다. 내 몸이 움직이고 덩달아 마음도 움직인다. 몸과 마음이,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된 듯 해방감이 밀려온다. 되는 대로 흔들어 볼품은 없어도 그게 뭐 어떤가.

춤, 그것은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몸의 움직임이다. 모든 생명체는 움직임으로써 서로 신호를 보내고 소통하고 나누고 협력하며 살아간다. 나를 표현하고 세상과 만나는 것도 모두 움직임으로써 일어나는 생명의 몸짓이고 자연의 리듬일 터. 말하자면 살아 있음의 자기표현이고 존재의 향유이며 더 역동적인 자기 창출이 아닐까. 삶을 살되 그저 밋밋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제대로, ‘제멋대로’ 살아 보려는 것, 그리하여 제 존재성 혹은 자유를 찾는 것 말이다.

내 몸이 자꾸 들썩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흔들흔들 격렬하게 움직임으로써 ‘나’를 느껴 보고 싶어서. 더욱 살아 생동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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