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고립된 예술가들의 도전...새로운 무대가 생겨난다
2022년 02월 21일(월) 17:35
위드 코로나 시대, 예술가로 산다는 것
드로잉 유튜브 시작한 설치미술가
냅킨·안내문 등에 드로잉 일기 그려
온라인 관람객과 공감하고 전시회도
공연으로 세계여행 안내하는 연극인
소극장 장점 살려 한달간 라이브 공연
변화된 시대 공연예술 생태계 만들기

권승찬 작가의 드로잉. 서류봉투나 병원 영수증, 냅킨에도 그림을 그린다.

“많은 작가들이 작업실만 작품활동을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에게는 유튜브가 또 하나의 작업공간입니다. 아직까지는 불안정하고 불규칙한 상황이지만 코로나19가 저에게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설치미술가 권승찬씨는 요즘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져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대상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드로잉을 위한 재료가 된다.

냅킨에 붓펜을 이용해 꽃화병을 그리고 새해를 맞아 한반도 모양의 호랑이 그림을 그리더니 어느 날은 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받아온 안내문에도 꽃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드로잉 과정 영상을 촬영해 온라인을 통해 공유한다.

권승찬 작가는 지난해 8월 드로잉 작업물을 모아 ‘슬기로운 백수생활-권승찬의 드로잉 일상’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수차례의 개인전은 물론 국내외 전시회를 다닐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설치미술의 베테랑인 권 작가가 드로잉 작업에 열심인 건 무엇 때문일까.

“코로나19 팬데믹이 오면서 여러 전시 일정이나 계획들이 연기되거나 축소가 됐습니다. 프로젝트형 작가이기도 하고 레지던스 돌아다니며 기획하면서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일이 많이 줄고 시간도 갑자기 남아돌게 됐죠.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1년 전부터 매일 일기를 쓰듯 드로잉 작업을 했어요.”

의도치 않게 백수(?) 생활이 시작됐지만 작업의 끈을 놓지 않으려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고 싶을 때 하는 작업이다보니 게을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드로잉도 쉬게 되는 날이 늘었다.

드로잉 영상을 촬영, 편집한 후 유튜브 ‘권승찬의 드로잉일상’에 업로드한다.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시작하게 된 게 유튜브였다. 플랫폼 만드는 법부터 편집하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유튜브를 보면서 배웠고 드로잉 관련 영상을 보면서 촬영하는 요령을 알아갔다.

그렇게 해서 ‘권승찬의 드로잉일상’을 개설하고 2021년 5월 24일 첫 영상이 업로드 됐다.

‘작년부터 일상의 한 순간을 드로잉으로 일기처럼 기록해 왔습니다. 매일 쌓여가는 드로잉을 어떤 형식으로 공유해야 하나 고민도 됐습니다. 얼마 전 새로운 공간으로 작업실을 옮겨오면서 그동안 생각만 해왔던 드로잉 영상을 촬영해 보기로 했습니다. 영상촬영 장비는 휴대폰이 유일했습니다. 작업실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카메라 삼각대, 각목, 휴대폰 거치를 끈으로 묶어 휴대폰 고정대를 만들었습니다. 바닥에 앉아 드로잉하고 바로 위에서 영상 촬영을 합니다. 영상촬영과 편집은 나에겐 새로운 배움과 도전입니다. 부족하지만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권승찬의 드로잉일상’에 업로드했던 첫 영상물. 영상작업에 필요한 거치대를 만들어 그렸다.
권 작가는 인사말과 함께 영상촬영 일자와 드로잉 재료, 촬영장비 등에 대한 세세한 기록도 남겼다. 친절하게 영문 설명을 첨부하기도 한다.

권 작가의 드로잉 일상 일기는 작품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자 작업 공간이며, 관람객과 만날 수 있는 전시공간이기도 했다. 벌이는 없지만 확실히 일은 많아졌다.

지난해 8월에는 드로잉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제목은 ‘슬기로운 백수생활-권승찬의 드로잉 일상’전. 아들과 함께 통닭을 먹고 야구를 한 일,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기억, 컵라면으로 컵밥을 만들고 장을 보고 음식을 손질하는 등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수백장의 그림으로 남겼고, 160점을 선별해 전시했다.

권 작가가 운영하는 또 다른 채널 ‘무등미술공작소-미디어랩’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을 소개하는 작가 탐방, 국내외 전시 및 프로젝트 소개를 콘텐츠로 삼는다. 작가들을 소개하는 ‘드로잉 탐방’ 코너에서는 작가들이 생각하는 드로잉에 대한 정의를 들어보고 작업세계를 소개하기도 한다. 영상 말미에는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영상도 첨부한다.

“연령, 경력, 지역 관계없이 많은 작가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작가들이 전시를 하면 보러가기도 하고 사적인 만남을 갖기도 해요. 직접 촬영하기도 하고 작가들이 보내준 사진이나 영상을 받아서 올리는 작업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작가들도 만들어진 영상을 보면 재미있다고 해줍니다.”

그동안 윤진섭(미술평론가), 조장현(도자), 김희상(조각), 노을(회화·도자), 김설아(회화), 서영실(회화), 정정하(회화), 조현택(사진), 노은영(회화), 유지원(설치), 신도원(미디어아트), 조근호(회화) 작가 등을 만나왔다.

권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생기면서 드로잉을 하게 됐고,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유튜브 플랫폼을 찾게 됐다”며 “문화예술이라는게 핫한 주제는 아니라서 구독자층의 증가가 더디기는 하겠지만 5년이든, 10년이든 나의 드로잉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쌓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이어 “저의 변화를 두고 누군가는 ‘그 시간에 작업을 더 하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봐주는 동료들도 많았다”면서 “코로나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서 예술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지,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문화계 곳곳에서는 권 작가처럼 코로나19 팬데믹에 주저앉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움에 도전하려는 예술인들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극단 ‘푸른연극마을’ 이당금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무대 기회가 줄어든 음악인들을 위해 ‘이당금의 지구여행 음악콘서트’를 기획했다.
극단 ‘푸른연극마을’ 이당금 대표는 지난해 11~12월 새로운 공연을 기획했다. 연극 무대에서 음악인들이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준비한 것이다. 제목은 ‘이당금의 지구여행 음악콘서트’.

재즈, 국악,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푸켓, 스페인, 뉴욕은 물론 안드로메다까지 여행할 수 있는 공연으로, 여행에 대한 갈증을 공연으로 풀어낸 무대였다.

11월 20일부터 12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음악여행이 진행됐다. 하이 미스터 메모리 트리오의 ‘카오산로드에서 푸켓섬으로 떠나는 아트포크락’, 상흠이크로스오버밴드의 ‘조선에서 레알마드리드까지 기타 들고 이리오너라’, 김마스타 트리오의 ‘뉴올리언스에서 시카고 찍고 뉴욕으로 떠나는 리듬&블루스’, 재즈콰이어 The Sweet의 ‘아라비아해 몰디브에서 마시는 모히또’, NS JAZZ BAND의 ‘보이저 1호 타고 안드로메다 우주로 향하는 DEEP SWING’까지 서울과 광주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한달동안 이어진 콘서트는 코로나19로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긴 공연장에 힘을 실어주고, 무대 기회가 줄어든 예술인들이 문화 향유에 목말라 있는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1석 3조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소극장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실감나는 라이브 공연이 됐다는 평가다.

당시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시민들에게 공연예술이 주는 위로와 치유 공감과 소통에 대한 의문으로 공연을 기획했다”며 “뉴노멀화로 변화된 시대와 동행하는 공연예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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