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수필-황옥 수필가
2022년 02월 16일(수) 03:00 가가
한양대 정민 교수의 ‘한시 이야기’를 읽느라 밤을 샜다. 두껍지도 않은, 250쪽 남짓한 책인데도 흐릿한 시력 때문에 읽고 나니 아침이었다. 지은이는 한시를 읽으면서 사물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함께 길러 나갈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4년쯤 전에 조양숙 씨의 ‘논어강설’을 읽을 때다. 송나라 휘종의 그림 이야기가 있었는데 정민의 ‘한시 이야기’가 전거라 했다. 그사이 잊고 있다가 ‘혜원 신윤복’ 화집을 넘겨 보던 중 생각이 떠올라 위탁 주문한 것이다.
‘한시 이야기’는 한시와 관련된 스무 편의 이야기인데 각 편마다 화제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이다. “옛날부터 그림과 시는 아주 가까운 사이었다. 시는 모양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가 없는 시라는 말도 있었다”로 서두 실마리를 풀고 있다.
송나라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한 번 더 되돌아보면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조광윤은 나라를 일으키면서 “대신과 간관을 절대로 죽이지 말라”는 원칙을 세웠다. 새 왕조의 기틀을 받칠 주춧돌이다. 나라의 발전은 바른 정치와 왕의 신념에 달렸다. 언로가 살아야 문화적 황금시대도 열 수 있다. 송나라가 그랬다.
중국의 한시하면 당나라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당송 8대가 중 당의 시인은 한유와 유종원 뿐이고, 여섯 분은 송나라 시인들이다. 그뿐 아니라 범중엄, 사마광, 포청천 같은 유능한 정치가들이 즐비하여 반석이 튼튼했다.
그러나 세월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영원은 없다. 휘종은 부왕 신종의 열한 번째의 왕자로 왕좌와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문학과 그림을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어쩌다 18세에 황제가 되었으나 이미 부패해 버린 나라를 바로잡을 재목이 아니었다. 결국 금나라에 망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비록 정치는 그르쳤어도 휘종의 그림에 대한 재능은 뛰어났다. 종종 궁중의 화공들을 모아 그림대회를 열고 그때마다 손수 화제(畵題)를 내렸다. 평범한 화제가 아니라 유명한 시 중에서 한 구절을 뽑아 제목으로 삼았다. 한 번은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가 제목이었다. 꽃향기의 실존은 알지만 보지는 못한다. 이렇다 할 화공들도 당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중 한 젊은이가 그림을 제출했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다. 얼마나 재기 넘친 착상인가!
어느 날은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는 화제를 걸었다. 역시 생각을 강요하는 제목이다. 재주꾼들은 있기 마련, 어느 화가는 어디에도 절은 없이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다. 가까운 곳에 절이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入象盡意)라 하며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의미란다. 나비는 향을 쫓기 마련이고 절이 없는데 물동이 인 스님이 산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수필도 그렇다. 보이는 것만 써진 글은 싱겁다. 상상을 다양하게 유발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명문일 것이다.
일기는 초등학생도 쓴다. 사실과 생각만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은 아니다. 보고서가 아닌 이상 사실의 기록만으로는 곤란하다. 작가의 학문과 지식, 다양한 경험과 사고의 융합이 글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수필을 중년 이후의 글이니 하는 말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수필가는 많아도 수필로서 명작이 드문 것은 그만큼 수필이 어렵다는 말이다. 어떤 수필가는 수필을 “크게는 위대한 문호의 글, 작게는 깨끗한 문사의 글”이라 평하기도 했다.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지만 이해는 간다. 수필은 “안개처럼 와서 안개처럼 사라지는 수법”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 윤오영의 주장이다. 그런 유려(流麗)한 글이 안 되니까 재능 없는 나는 글쓰기가 두려운 거다. 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삼십 년이 지나면 무엇 하리. 글마다 부끄럽다. 생각의 여백, 독자의 상상이 똬리를 틀 그런 여백이 있는 글을 써 보고 싶다.
‘한시 이야기’는 한시와 관련된 스무 편의 이야기인데 각 편마다 화제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이다. “옛날부터 그림과 시는 아주 가까운 사이었다. 시는 모양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가 없는 시라는 말도 있었다”로 서두 실마리를 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은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영원은 없다. 휘종은 부왕 신종의 열한 번째의 왕자로 왕좌와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문학과 그림을 즐기며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어쩌다 18세에 황제가 되었으나 이미 부패해 버린 나라를 바로잡을 재목이 아니었다. 결국 금나라에 망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비록 정치는 그르쳤어도 휘종의 그림에 대한 재능은 뛰어났다. 종종 궁중의 화공들을 모아 그림대회를 열고 그때마다 손수 화제(畵題)를 내렸다. 평범한 화제가 아니라 유명한 시 중에서 한 구절을 뽑아 제목으로 삼았다. 한 번은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가 제목이었다. 꽃향기의 실존은 알지만 보지는 못한다. 이렇다 할 화공들도 당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중 한 젊은이가 그림을 제출했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다. 얼마나 재기 넘친 착상인가!
어느 날은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는 화제를 걸었다. 역시 생각을 강요하는 제목이다. 재주꾼들은 있기 마련, 어느 화가는 어디에도 절은 없이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 올라가는 모습을 그렸다. 가까운 곳에 절이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入象盡意)라 하며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의미란다. 나비는 향을 쫓기 마련이고 절이 없는데 물동이 인 스님이 산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수필도 그렇다. 보이는 것만 써진 글은 싱겁다. 상상을 다양하게 유발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명문일 것이다.
일기는 초등학생도 쓴다. 사실과 생각만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은 아니다. 보고서가 아닌 이상 사실의 기록만으로는 곤란하다. 작가의 학문과 지식, 다양한 경험과 사고의 융합이 글 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 수필을 중년 이후의 글이니 하는 말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수필가는 많아도 수필로서 명작이 드문 것은 그만큼 수필이 어렵다는 말이다. 어떤 수필가는 수필을 “크게는 위대한 문호의 글, 작게는 깨끗한 문사의 글”이라 평하기도 했다.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지만 이해는 간다. 수필은 “안개처럼 와서 안개처럼 사라지는 수법”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 윤오영의 주장이다. 그런 유려(流麗)한 글이 안 되니까 재능 없는 나는 글쓰기가 두려운 거다. 수필을 쓰기 시작한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삼십 년이 지나면 무엇 하리. 글마다 부끄럽다. 생각의 여백, 독자의 상상이 똬리를 틀 그런 여백이 있는 글을 써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