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상황 변화와 도서정가제 - 심명섭 한국도서관문화진흥원 순회사서
2022년 02월 15일(화) 23:00
도서정가제는 위탁판매 제도와 함께 출판 유통의 근간을 지탱하는 도서 판매 제도이다. 이는 국민에게 독서 활동을 통해 여러 장르의 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상품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출판사와 서적상 그리고 독자와의 밀접한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즉, 문화상품 보호를 위해 서적상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할인율을 강제로 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상품 가운데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물품은 유일하게 서적뿐이다.

이와 같이 일반 상품과는 다르게 문화적 상품인 도서의 정가란 출판사가 최종 소비자인 독자에게 판매하는 독자의 구매 가격이다. 그러므로 책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관계에 따라 형성되고 가격 경쟁이라는 시장경제의 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자유가격 제도 하의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품이다. 다른 상품에는 일절 부여하지 않는 예외적 정가제 인정은 출판물이 여느 공산품과는 다른 문화상품으로 사유재이기에 앞서 공공재이며,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 부재로 인한 폐해나 역기능보다는 교육과 교양, 문화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순기능이 훨씬 크다는 것을 법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르면 도서정가제는 지난 2003년부터 책값의 과열 인하 경쟁으로 학술 문예 분야의 고급 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3년마다 재검토해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법 개정을 통해 현재는 모든 도서는 출판물 종류에 관계없이 출판사가 정한 정가의 10% 할인에 각종 경품이나 마일리지 제공 등 간접 할인 5%까지 적용, 최대 15%까지만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법 개정을 위한 논의 때 마다 출판사와 온오프라인 서적상 양측 간의 갈등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적상은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정가제를 고수하려 한다면 온라인 서적상은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어떻게든 정가제를 파괴하려고 한다. 가장 최근에 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작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오는 2월 23일부터 시행된다.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직·간접 15% 할인이라는 현재의 안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몇 가지 달라진 사항이 있다.

먼저 3년마다 도서정가제 타당성 검토 시 유지·완화·폐지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던 것에 강화도 가능하도록 하였다. 다음으로 도서의 값을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재평가 가능 기간을 기존 18개월에서 12개월로 6개월 단축시켜 출판사들이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 및 공공도서관은 도서 구입 시 지역 서점을 이용토록 했으며 정가의 10% 이내의 가격만 할인 적용토록 했다.

이를 분석해 보면 책값은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는 관계로 값을 올리는데 6개월을 단축하고, 지역 서점의 경우 마일리지 5% 제공이 삭제돼 5%의 이득을 취할 수 있고, 공공도서관은 5% 더 비싸게 구입해야 된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지역 서점 지원을 위한 근거로 서점의 정의를 신설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서점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역 서점의 요건을 조례로 제정하는 한편, 정책 수립 및 지원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활용하기 위하여 지역 서점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게 하였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 재판매 가격 유지 제도라는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국 어디에서나 균일한 가격으로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도록 하였다. 이와 반면에 미국·영국·캐나다 등 영미권은 도서정가제를 실시하지 않음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훨씬 많은 책을 판매하고 수출도 하고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 이는 다양한 출판 활동과 합리적인 시장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출판사, 중간 서적상, 소비자인 독자의 구매력에 맞는 정가 책정과 판매로 서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우리 상황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출판계와 온오프라인 서적상의 의견을 만족시켜 주는 정답은 아니다. 시대 상황의 변화에 발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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