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말-김향 수필가
2022년 02월 13일(일) 23:00 가가
오랜만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엔 먼 거리였으므로 새벽에 출발하자고 했다. 저녁을 마친 후 몇 가지를 점검하고 있는데 그의 손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가 반갑잖은 듯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가 있었고 내 표정은 샐쭉 일그러졌다.
“금방 올게.”
그는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약속을 남기고는 곧장 문밖으로 사라졌다.
“아이구,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마세요. 아, 그래도 오늘만큼은 진짜 꼭 지켜야 돼. 알았지? 새벽에 출발해야 하니까. 술도 먹지 말구. 꼭!”
내 입에서도 자동화된 말들이 쏟아졌다.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가 밤마실을 즐긴 지는 꽤 되었다. 같은 통로에 살면서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얼마 전 안면을 트더니 급기야 한 주만 안 만나도 안달 나는 사이가 되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여자들이야 더러 만나기도 했지만 남자들까지는 아니었었다. 우연히 위아래층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오히려 그들이 더 가까워져 버렸다. 또래 아이들의 아빠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그리고 같은 세대라는 공통점이 더해져 순식간에 동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날 새는 줄도 몰랐다.
아내들의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말인즉슨,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잠자리에 들 시간, 그 자투리 시간을 좀 이용해 보겠다는데 그것도 허용이 안 되느냐 했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나는 괜찮다 쳐도(절대 괜찮지 않지만) 주말부부인 윗집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아무리 제동을 걸어 봐도 그 당사자가 더 원하는 일이라니 어쩔 수도 없었다. 아내들의 눈총을 뒤로하고 그들은 모처럼 해방구를 맞은 듯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말거리는 넘쳐났고, 술도 좀 했겠다, 기분도 좋겠다, 그깟 잔소리쯤은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여간, 깜박 잠들었다 깨어 보니 새벽 세 시가 다 되었다. 아니, 아직도?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급기야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렇게나 당부를 했건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라니. 어디 문을 열어 주나 봐라. 나는 찰칵 현관의 걸쇠까지 걸어 버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내 귀는 더욱 쫑긋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밀려왔다.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갔다. 귀를 대 봐도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겁도 났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허 참, 그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인 채 잔뜩 엎드려 있었다. 대문 앞이 자기 집 안방인 줄 아는가. 주춤주춤 그를 흔들어 보았다. 그는 몸도 목소리도 배배 꼬여 가누지도 못했다. 나는 찰싹 그의 등을 후려쳤다.
“어이구, 호랭이 물어 가네. 무등산 호랑이는 뭐 먹고 사나 몰라.”
고주망태가 된 그를 붙들어 겨우 침대에 눕혔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렇게 일렀건만 마누라 말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니까. 술이라도 좀 덜 먹든지. 아이구, 저 화상. 무등산 호랑이는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네. 정말!”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호랑이 물어 가네? 뭣 먹고 사나 몰라?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주절주절 퍼붓던 말의 출처는 다름 아닌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엄마도 그랬었다. 아버지와 싸우고 나면 ‘아이고, 대롱산 호랭이는 뭐 먹고 사나 몰라’로 시작되는 긴 사설을 쏟아 놓곤 했었다. ‘대룡산’(大龍山)이 ‘대롱산’이 되고 ‘호랑이’가 ‘호랭이’로 바뀐 엄마의 사설은 원색의 리듬을 타고 가파르게 올랐다가 사부작이 내려앉곤 하였다. ‘대롱산 호랭이’를 내세워 엄마는 치솟는 화를 눅이고 뒤틀린 것들을 조율했다. 설거지를 하거나 방망이질을 할 때도 그랬다. 그렇게 한바탕 야무지게 쏟아내고 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평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롱산 호랭이’는 비단 엄마만의 것은 아니었다. 인근에선 알아주는 명문고를 나왔다는 이수 아버지는 이도 저도 아닌 술주정뱅이였다. 그 집을 지날 때면, ‘아이고, 저 웬수. 대롱산 호랭이는 뭣을 먹고 사나 몰라.’ 가난에 허덕이는 이수 엄마의 긴 하소연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 역시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의 굽이굽이를 더러는 맞서 싸우는 것으로, 더러는 돌아서서 구시렁대는 것으로 그렇게 넘겼던 것일까. 딱히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도 그렇게 몇 마디 해 대고 나면 그래도 가슴은 후련했을까. 그것이 강퍅한 삶의 질곡을 넘어가는 방법이었을까?
그나저나, 수없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알았어, 알았다니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곯아떨어지고 만 저 화상을 눈감아 줘, 말아?
그는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약속을 남기고는 곧장 문밖으로 사라졌다.
“아이구,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마세요. 아, 그래도 오늘만큼은 진짜 꼭 지켜야 돼. 알았지? 새벽에 출발해야 하니까. 술도 먹지 말구. 꼭!”
내 입에서도 자동화된 말들이 쏟아졌다.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가 밤마실을 즐긴 지는 꽤 되었다. 같은 통로에 살면서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얼마 전 안면을 트더니 급기야 한 주만 안 만나도 안달 나는 사이가 되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여자들이야 더러 만나기도 했지만 남자들까지는 아니었었다. 우연히 위아래층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오히려 그들이 더 가까워져 버렸다. 또래 아이들의 아빠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그리고 같은 세대라는 공통점이 더해져 순식간에 동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날 새는 줄도 몰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내 귀는 더욱 쫑긋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밀려왔다.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갔다. 귀를 대 봐도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겁도 났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허 참, 그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인 채 잔뜩 엎드려 있었다. 대문 앞이 자기 집 안방인 줄 아는가. 주춤주춤 그를 흔들어 보았다. 그는 몸도 목소리도 배배 꼬여 가누지도 못했다. 나는 찰싹 그의 등을 후려쳤다.
“어이구, 호랭이 물어 가네. 무등산 호랑이는 뭐 먹고 사나 몰라.”
고주망태가 된 그를 붙들어 겨우 침대에 눕혔다.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렇게 일렀건만 마누라 말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다니까. 술이라도 좀 덜 먹든지. 아이구, 저 화상. 무등산 호랑이는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네. 정말!”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호랑이 물어 가네? 뭣 먹고 사나 몰라?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주절주절 퍼붓던 말의 출처는 다름 아닌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엄마도 그랬었다. 아버지와 싸우고 나면 ‘아이고, 대롱산 호랭이는 뭐 먹고 사나 몰라’로 시작되는 긴 사설을 쏟아 놓곤 했었다. ‘대룡산’(大龍山)이 ‘대롱산’이 되고 ‘호랑이’가 ‘호랭이’로 바뀐 엄마의 사설은 원색의 리듬을 타고 가파르게 올랐다가 사부작이 내려앉곤 하였다. ‘대롱산 호랭이’를 내세워 엄마는 치솟는 화를 눅이고 뒤틀린 것들을 조율했다. 설거지를 하거나 방망이질을 할 때도 그랬다. 그렇게 한바탕 야무지게 쏟아내고 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평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대롱산 호랭이’는 비단 엄마만의 것은 아니었다. 인근에선 알아주는 명문고를 나왔다는 이수 아버지는 이도 저도 아닌 술주정뱅이였다. 그 집을 지날 때면, ‘아이고, 저 웬수. 대롱산 호랭이는 뭣을 먹고 사나 몰라.’ 가난에 허덕이는 이수 엄마의 긴 하소연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 역시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의 굽이굽이를 더러는 맞서 싸우는 것으로, 더러는 돌아서서 구시렁대는 것으로 그렇게 넘겼던 것일까. 딱히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도 그렇게 몇 마디 해 대고 나면 그래도 가슴은 후련했을까. 그것이 강퍅한 삶의 질곡을 넘어가는 방법이었을까?
그나저나, 수없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알았어, 알았다니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곯아떨어지고 만 저 화상을 눈감아 줘,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