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어머니
2022년 02월 04일(금) 04:00 가가
설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가 마주친 풍경이다.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과 카운터의 직원이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었다. 할머니 말인즉슨 코로나 접종을 3차까지 마쳤으니 목욕탕에 들어가겠다는 것이고, 카운터 직원은 QR 인증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할머니는 뻔히 아는 사이에 사람 말을 안 믿어 준다면서 재차 사정했다. 그러나 직원은 ‘법을 어기면 큰일 난다’며 거부했다.
한쪽에서 조용히 하소연을 들어보니, 건망증이 심한 할머니가 휴대폰을 집에 놓고 와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고집을 접고, 어디론가 연락을 하기 위해 카운터 전화를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번호판을 누르지 못한 채 1~2분 동안 머리를 갸웃거렸다. 중얼중얼 번호를 떠올리려 애를 쓰시더니 10여 차례 시도 끝에 ‘연결이 됐다’면서 카운터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이후 상황은 더 이상 지켜보지 못했지만 목욕을 마친 뒤 카운터 직원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전화를 건 지 20분 정도 지나서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휴대폰을 들고 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보란 듯이 의기양양하게 QR 인증을 한 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건망증 탓에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할머니의 한 시간에 걸친 QR 인증 소동을 보면서, 이게 어디 이 할머니만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할머니와 연세가 비슷한 부모님 생각에 하루 종일 맘이 편치 못했다. 단골 할머니 한 명 쯤은 눈 감아 줘도 될 터인데,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방역 수칙을 고집한 융통성 없는(?) 직원도 얄밉기보다는 대견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일흔이 넘으면서부터 감기를 사시사철 달고 사시는 어머니는 아직 코로나 접종을 못하셨다. 코로나 첫 해에는 무서워서 피하다가 이듬해에는 접종할 만하면 감기가 도져 실패했다. 잦은 감기와 위염 등으로 매주 병원을 찾는 어머니는 접종을 못한 탓에 매번 PCR 검사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신다. 이번 설에 어머니는 감기가 낫는 대로 접종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셨다. 이제 설도 지났으니 그만 하면 족한 줄 알고 코로나가 슬슬 물러나길 바란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일흔이 넘으면서부터 감기를 사시사철 달고 사시는 어머니는 아직 코로나 접종을 못하셨다. 코로나 첫 해에는 무서워서 피하다가 이듬해에는 접종할 만하면 감기가 도져 실패했다. 잦은 감기와 위염 등으로 매주 병원을 찾는 어머니는 접종을 못한 탓에 매번 PCR 검사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신다. 이번 설에 어머니는 감기가 낫는 대로 접종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셨다. 이제 설도 지났으니 그만 하면 족한 줄 알고 코로나가 슬슬 물러나길 바란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